[미디어NOW] 기자의 안전한 휴대폰

입력
2016.09.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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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문자를 입수해 보도했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MBC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문자를 입수해 보도했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9월 7일. 애플이 아이폰7을 발표하는 날이다. 하지만 애플 팬들의 관심은 뜨겁지 않다. 기자도 그렇다. 잡스의 마법은 사라진 지 오래. 매너리즘에 빠진 애플에 대한 애정도 이제 식어버렸는데 마침 출시된 갤럭시 노트 7은 최고의 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제 많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갤럭시로 갈아타겠구나’ 하던 와중에 ‘역시 나는 안 되겠다’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 모를 발화 사건이 잇따라 보고돼서가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MBC 뉴스에 보도된 사건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전례 없는 충돌은 드라마 같은 전개의 연속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접대, ‘청와대 익명 관계자 인터뷰’를 통한 수상한 폭로 등.

그러나 내 관심은 ‘기자의 휴대폰’에 있었다. 도대체 조선일보 기자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나눈 이야기가 어떻게 MBC 뉴스에 보도될 수 있었을까? 조선일보에 따르면 해당 기자는 전화 통화 내용을 요약해 법조팀 내부 기자들에게만 카카오톡으로 공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내용이 MBC에 보도됐고, 지난달 29일 아침 영장을 가지고 온 검찰이 이 기자의 휴대폰을 통째로 압수해 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몇 명에게만 공유한 카카오톡 문자가 외부로 유출됐다. 만약 문자를 받은 기자들이 직접 유출한 게 아니라면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수사기관이 영장을 들고 가 카카오 측으로부터 제출받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은 기자들의 휴대폰 중 하나를 정보기관이 감청하고 있었던 경우다. 전자는 합법, 후자는 불법적인 정보 입수이고, 이것을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이 MBC에 유출한 것이라면 둘 다 불법이다.

언론인에게는 섬뜩한 일이다. 불안해서 일단 국산 폰은 꺼리게 된다. 정부 3.0 앱도 ‘알리미 서비스’라며 몰래 설치해 놓는 상황에, 수많은 기본 앱 중에 수상한 기능을 하는 게 있는 건 아닐까. 안드로이드 폰은 통화녹음도 되는데 혹시 감청되고 있는 건 아닐까.

국산 메신저 앱도 당연히 꺼리게 된다. 수사기관이 영장을 갖고 오면 업체는 내줄 수밖에 없다. A와 B가 나눈 대화에만 혐의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 수사기관의 요구 관행을 보면 A와 B의 카톡 전체를 달라고 한다. 결국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 내용까지 싹 다 넘어간다.

해외 앱인 텔레그램은 어떨까. 적어도 국내 수사기관이 요구한다고 곧장 내용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텔레그램 역시 ‘1대 1 비밀대화’가 아닌 일반 대화는 서버에 내용이 남아 있는 데다 데스크톱 버전까지 있으니 PC를 압수한다면 결국 털린다. 중요한 정보를 교환할 때는 가급적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되, 사용하더라도 데스크톱 버전이 없고 한국에서 덜 사용하는 해외 메신저를 사용하면 조금 안전해지려나. 대화한 상대방 휴대폰이 감청되고 있다면 역시 소용없다. ‘안전한 휴대폰’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다.

공영방송 보도국장에게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 보도개입을 하고, 보도국장이 말을 안 듣는다고 사장한테 자르라고 하고, 통신사를 통해 ‘청와대 익명 관계자’의 인터뷰를 흘리는 세상에서 기자의 휴대폰이 안전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자의 휴대폰마저 안전하지 않다면 누가 제보를 할 수 있겠는가.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도 익명을 요구한 내부자의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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