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16년만에 한국언론 만나 인터뷰

16평 접견실… 소박한 옛 ‘왕궁’ 인상적
“한국 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농담도
“어릴 때부터 사랑, 자비, 연민 심는 교육이 중요
AI 시대? 그래도 인간의 지성이 더 뛰어날 것”
달라이라마 방한추진회가 지난달 30일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궁'에서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고 초청장을 전달하고 있다. 다람살라 공동취재단

달라이 라마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인도 다람살라 남걀 사원 맞은편에 있는 관저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달라이 라마가 정치ㆍ종교를 다 통괄하는 법왕일 때는 ‘왕궁’이라 불렸으나, 정치권력을 총리에게 이양한 뒤엔 관저로만 불리는 곳이다.

그래도 한때 ‘왕궁’이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관저 내 접견실은 나무로 꾸며진 소박한 16평 규모의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특성을 반영한 듯 화려한 장식보다는 촘촘하게 배치된 의자에 더 중점을 둔 곳이었다. 집무실은 접견실 뒤에 붙어 있었다. 그 곳 역시 책상, 의자 같은 사무집기 몇 개만 있었을 뿐 접견실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이었다.

몇몇 해외 인사들이 옛 티베트 양식으로 크고 튼튼하게 다시 지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달라이 라마는 “비 바람만 피하면 됐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소박하나마 깔끔하게 유지되는 건 달라이 라마 본인이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들을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전날 열린 아시아법회에서도 처음 꺼낸 인사말이 “숙소 등 여러 면에서 환경이 열악한 이 곳까지 머나먼 험한 길을 거쳐 부처님 말씀을 듣겠다고 찾아온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델리까지 7시간 반 비행기를 탔다. 숙소에서 여유시간은 단 2시간. 샤워하고 밥 먹으니 끝이다. 곧바로 기차에 실려 4시간 반을 이동해 찬디가르역에 도착, 다시 버스에 실려 8시간 뒤 다람살라에 부려졌다. 모든 길은 똥이 함께 하고, 고속도로조차 소와 양과 개가 느릿느릿 돌아다닌다. 충돌할까 조바심 내는 건 동물도, 운전사도 아닌 승객들뿐이다. 델리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움직였지만, 다람살라 숙소에 짐을 던진 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가 넘었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다람살라는 인도가 티베트 난민을 위해 내어준 곳이다. 복잡한 국내외 정치적 지형 등을 감안하면 애초에 좋은 곳을 줬을 리는 없다. 당시만 해도 다람살라는 대지진 이후 오랜 기간 버려진 곳이었다 한다. 그 험한 산간 마을에 티베트인들이 정착해 삶을 이어갔다.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다 보니 모든 집은 계단식이고, 비라도 오면 급경사를 타고 흐르는 하수구는 폭포가 된다.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낡은 일제 스즈키 택시들이 휘젓고 다니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무리 클랙션을 울리고 눈 바로 앞에서 차가 휙휙 지나다녀도 비킬 생각은커녕 신경조차 쓰지 않는 소, 염소, 개가 더 신기했다.

아시아 전역에서 온 신도 1,200여명을 대상으로 아시아법회를 여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 방한 초청을 하려는 국내 불교 신자들과 함께 그곳에 갔다.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티베트 불교에 대한 서구의 열광 때문에 현자로 추앙 받는 달라이 라마는 아시아 불교 신자들이 몰려들자 지난해 아예 아시아 신자들만을 위한 아시아법회를 따로 만들었다.

국내 불교계는 1935년생으로 여든을 넘긴 그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방한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방한을 추진 중이다.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이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티베트 분리독립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인 상황은 까다로운 검문검색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몸 수색은 철저했고, 볼펜ㆍ휴대폰ㆍ촬영장비 등 검사가 극도로 민감했다. 관저 곳곳에는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잘 눈에 띄지 않는 구석구석에 저격수들이 숨어 있었다. 크고 작은, 몇 번의 암살테러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접견실에 들어선 달라이 라마는 일일이 관계자들과 악수하면서 “도대체 몇 년을 기다려야 한국을 갈 수 있느냐”며 쾌활한 농담부터 던졌다. 접견에는 금강, 진옥, 선재스님 등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위원회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함께했다. 방추위는 직접 인경해볼 수 있도록 만든 반야심경 석각판과 잉크, 한지를 선물로 준비했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고 싶어하고, 경전 가운데 반야심경을 좋아하는 달라이 라마를 위한 것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선물을 받아 들고는 아이처럼 웃어대며 “판타스틱”을 연발했다. 다음은 달라이 라마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취재진과 나눈 대화 전문이다.

법문하는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는 이날 용수 보살의 '보만론'(寶蔓論)을 주제로 공성(空性)과 보리심(菩提心)에 대해 설명했다. 다람살라 공동취재단
“내년엔 중국도 변할 듯”

“제가 아시아에서 일본을 빼곤 못 가본 곳이 많다. 다들 불교의 오랜 전통을 가진 국가들인데 왜 그럴까. 내가 비구이기 때문인가?(웃음) 아마 중국 정부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중국 정부에서 변화가 있기 전에는 어렵지 않겠나. 그런데 중국 정부가 공산당이 지배하긴 하지만 내부에서 좀 변화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보면 북한에도 압박을 주고 있지 않은가. 요즘의 중국은 조금 더 큰 시각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듯 하다. 저도 중국에 여러 친구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의 말로는 내년에 중국에서 중요한 회의(제19차 당대회)가 열리는데 이 때 조금의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한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는 나의 내면적으로는 일절 속이는 바가 없다. 2001년에 총리를 만들어 법왕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2011년 선거로 총리를 뽑으면서 완전히 정치에 손 뗐다. 법왕 체제라는 게 400년을 이어온 것인데, 그걸 내 손으로 끝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2,600년 전 부처가 입었던 가사와 똑같지만, 이 내 머리 속에 든 뇌는 젊다. 젊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웃음)

방추위가 몇 년 전부터 기울여온 노력, 정말 고맙다. 한국 불자들의 신심과 내 내면의 깨끗하고 충실한 서약에 어긋남이 없다면 방한이야 시간 문제이지 않겠나. 언젠가는 갈 것이니 조바심 내지 말고 느긋한 마음을 가지자.(웃음)

중요한 건 제가 티베트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 불자나 다른 모든 불자들에게도 누누이 강조하듯, 21세기의 불자라면 더불어 살아야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불자 대부분을 보면 오랜 옛 전통에 따라 독송과 예불을 열심히들 하지만, 배움과 수행은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시대에 뒤쳐지고 못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제가 남인도 지역의 승가원에 자주 다니면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는데 그 때도 늘 경전의 말씀을 제대로 배우는데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을 거듭한다. 상근기(上根機)를 가진 이는 부처님 말씀을 관찰하고 분석하지만, 하근기(下根機)를 가진 이는 신심으로만 하려 든다. 신심도 좋다. 좋은데 그것만으로는 불교가 지속되지 않는다. 분석과 관찰을 하고 수행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수천 년 이어왔듯, 앞으로 수천 년도 불교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어 한국 신도들에게도 제대로 배우고 공부하는 데 힘쓸 것을 거듭 부탁한다.

과학은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불교 사상을 제대로 알고 배우고 또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도 공부한다면, 거기에 대해 과학적 공부도 한다면, 현대불교가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30년 전부터 과학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처음에야 그 분들은 불교와 과학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해도 안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감정과 심리의 운동이 과학과 잘 접목되기 때문이다.

이제 불교는 종교이지만 하나의 사상, 철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걸 제발 잘 알아달라. 그래서 티베트 있는 학교 선생님들 중에 스님이 많은 데 다들 법승이라 불린다. 해서 ‘사상가’ ‘철학자’로 바꾸라 했다. 또 얼마 전에 라다크에 있는 학교엘 갔더니 내 사진을 들고 와 서명을 해달라고 하더라. 보통 ‘석가의 비구 설법자 달라이 라마’라 쓰는데 그 때는 ‘석가의 비구 사상가 달라이 라마’라고 썼다. 내가 사상, 철학 잘 모르지만 그렇게 좀 뭔가 아는 체, 티를 내봤다.(웃음)

지금 한국을 못 찾고 있지만, 그래 그것도 그것대로 아쉬움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제 법문에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저 자신을 부처님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부처는 갔지만 그가 남긴 가르침은 지금도 살아 숨쉬지 않느냐. 제가 하는 법문을 책이나 글로 옮겨서 잘 전달하는 것도 좋겠다. 제 말씀도 널리 알리고 싶다.”

“공성과 보리심을 배우고 느끼면 달라질 것”
-방한이 성사된다면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어디 가서 누구와 만나고 싶나.

“누구 만나고 어디 가고 이런 생각 전혀 없다. (방추위 관계자들을 보며)어딜 갈까요?(웃음) 데리고 다니는 데로 다 따라 다니겠다.(웃음) 다만, 맛있다는 김치는 한번 먹어보고 싶다.(웃음) 한국인들에 전하고픈 메시지는 앞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다.

조상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나라가 한국이다. 지금도 신자들이 많다. 불교에 관심 가지고 많이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불법이라는 게 흔히 하는 말로 8만4,000법이라 한다. 불자라면 그 불법을, 부처님 말씀을 배우는 데 한층 더 노력해달라. 그 노력이란 스님뿐 아니라 일반인 남녀노소 모두 다 포함된다. 그 바탕은 아까 선물로 주신 반야심경에 다 담겨 있다. 공성(空性)과 보리심(菩提心)을 공부하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그 사유가 깊어지면 수행해야 한다. 그 경험과 체험이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삶이 바뀌게 된다. 훨씬 더 즐거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들었다. 법문에서 행복은 물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 결혼, 육아 걱정 등 물질 문제에서 늘 허덕인다.

“행과 불행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오감에 흔들리는 것, 그리고 마음에 달린 것. 오감은 쾌락과 즐거움에 대한 요구다. 마음은 의지에 달린 문제다. 우리는 마음이 더 큰, 의지가 더 강한 사람들이다. 운동선수가 고통을 뚫고 메달을 따듯, 우린 마음의 의지를 더 굳건히 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 마음의 힘을 기르는데 불교가 도움이 될 것이다. 세속의 윤리, 도덕의 문제에 대한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에서 알파고가 화제였다. 인공지능(AI) 시대 종교는 어떨까.

“글쎄. 아무리 AI라 해도 사람의 지성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렇다. AI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 아닌가. AI와 우리 공부 많이 하신 티베트의 계시 스님이 대결하면 우리가 이길 것이라 본다.(웃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문제다.”

-법문에서 평화를 많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시아는 많은 충돌, 갈등이 있다. 현실적 평화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맞는 말이다. 나 스스로 평화를 강조하지만 10년 내, 20년 내, 30년 내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갑자기 세상이 변하거나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사랑, 자비, 연민을 심어주는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 외에는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과학과 함께 나가야 한다 하셨지만, 창조론은 거의 퇴출되는 등 종교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래 종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나.

“창조론의 경우 그 목적과 목표를 봐야 한다. 왜 서양에서는 절대적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는가. 사랑과 연민 아닌가. 그리 창조했으니 피조물인 우리도 그리 살라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아버지가 그 길을 보여주셨으니, 그 아이들도 그 길을 따라 살라는 것이 창조론이 가지고 있는 참된 뜻이라 생각한다. 자이나교나 불교에선 창조주가 없다고 한다. 대신 인과 업의 원리에 따라 사랑, 연민, 자비가 필요함을 가르친다. 중요한 건 종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해 여전히 많은 울림을 준다는 점이다.”

달라이 라마의 마무리 발언이 이어졌다.

“한국에 가고 못 가고는 정치적 문제다. 그런데 그 정치적이라는 게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 관련된 문제다. 내가 한국 가는 것? 여기서 델리 가서, 델리에서 비행기 갈아타고 한국으로 가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다람살라=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