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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래 위해 예불ㆍ독송보다 과학 알아야”

[전문] 달라이 라마 인터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지난달 30일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궁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다람살라(인도)=다람살라 공동취재단

“원래 제가 서명할 땐 ‘석가의 비구, 설법자 달라이 라마’라고 씁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학교에 가서 서명을 부탁하기에 ‘석가의 비구, 사상가 달라이 라마’라 썼습니다.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런 식으로, 티를 좀 낸 거지요. 하하하.”

달라이 라마는 지난달 30일 오전 인도 다람살라 관저 접견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종교에만 머물지 말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계속 배워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님을 넘어 합리적 철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티베트 불교에 대한 서구의 열광을 감안하면, 동양적 신비주의 느낌이 강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간 셈이다. ‘기복신앙’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얘기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현각 스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이날 한국 취재진과 만남은 다람살라의 아시아 법회에 맞춰 진행됐다. 아시아 법회는 아시아 지역 불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회를 통합 개최하자는 의견에 따라 지난해 만들어졌다. 다람살라 남걀사원에서 나흘 간 열린 이번 법회에는 한중일을 비롯해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대만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 영국 포르투갈 등의 신도들까지 1,200여명이 참석했다. 개인 참석자까지 더하면 전체 규모는 3,000여명에 이르렀다. 법문 동시통역 언어만 10개 국어 이상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즐겨 읽는 용수보살의 보만론(寶?論)을 교재 삼아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공성(空性)에 대한 법문을 이어나갔다. 1935년생으로 올해 81세인 달라이 라마가 최근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의 방한 문제 때문이다. 한국 불교계는 적극적으로 달라이 라마 방한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는 대중국 관계가 걸린 미묘한 문제다. 알려진 대로 중국을 통일한 공산당은 1951년 티베트를 점령했고, 제정일치 사회 티베트의 정치ㆍ종교 지도자인 ‘법왕’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인도 다람살라로 쫓겨와 망명정부를 꾸렸다. 비폭력 투쟁을 내세운 지도자라는 점을 인정 받아 1989년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이 때문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서방국가들은 후원하고 있는 반면,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은 ‘분열주의자’라며 배척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 방문 국가에 대해서도 ‘분열주의자를 맞아들이는 건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한다. 달라이 라마 방한이 2000년부터 추진됐지만 성사되지 못한 이유다.

달라이 라마도 10년 이상 풀리지 않는 방한 문제가 답답한 듯했다. 그는 2001년 다람살라에서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데 이어, 2011년 티베트 난민들의 직접선거로 뽑힌 롭 상 상게 총리에게 정치권력을 모두 이양했다. “400년간 이어져 오던 법왕 체제를 내 손으로 끝냈다”면서 “나로서는 완전히 다 내놓은 것”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종교 지도자에 한정했다.

방추위 관계자는 “실제 달라이 라마의 노선은 ‘분리 독립’ 대신 ‘자치권 획득’이라는 중도 실용 노선으로, 망명 정부 이름도 그 때문에 정부(Government)에서 행정부(Administration)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셈이다. 방한 문제가 “정말 소수에 관련된 문제”이고 “(한국 불자들은)조바심 내지 말라”는 그의 말에도 이런 홀가분하고 열린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이와 관련 방추위 상임대표 금강 스님은 “나이 등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방한한다면 앞으로 몇 년의 시간밖에 없다”면서 “달라이 라마 당신이 오랜 불교 전통을 가진 국가들을 꼭 찾고 싶어하고, 그 가운데 한국을 무엇보다 우선해서 방문하고 싶다고 하는 만큼 방한이 꼭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날 인터뷰에서 “아직도 옛 관습에 따라 예불이나 독송에 치중하는 이들이 있는데 바뀌어야 한다”면서 그 이유로 “과학이 크게 발달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발달해나갈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불교를 알고 그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변화를 읽고 동시에 현대과학을 알아야만 지금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불교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30여 년 전부터 과학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달라이 라마는 특히 “지혜로운, 높은 근기(종교적 자질, 본바탕)를 가진 이는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을 분석하고 관찰해서 그 말씀에 따르지만 어리석은 낮은 근기를 지닌 이들은 신심만 가지고 그저 말씀을 따르려고만 한다”며 “처음에야 신심을 지닌 이가 빛날지 모르지만 오래 가는 믿음은 결국 분석과 관찰이 탄탄하게 뒷받침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공부와 수행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어 “이 얘기는 부처님 공부를 하는 스님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매일 전세계에서 온 방문객들과 만나는 달라이 라마의 일정은 분 단위로 스케줄이 짜였을 정도로 빡빡하다. 이날도 오전 7시부터 중국 신자들과 친견 등 법회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내내 각국의 방문자와 신자들을 만났다. 일정이 하도 바빠 자신의 개인적 정진을 위해서는 새벽 2시쯤부터 네 시간 정도를 쓰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달라이 라마는 거동이 느렸고 움직일 때마다 측근들의 부축을 받았다. 그럼에도 얼굴엔 윤기가, 말에는 활력이, 피부엔 탄력이 넘쳤다. 방한 문제를 얘기하다 문득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 되어 한마디 했다. “한국에 가게 된다면 김치라는 걸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

다람살라(인도)=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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