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칼럼] 담대한 변화

입력
2016.07.19 20:00

美 민주당 정강에 담긴 불평등 완화

한국사회도 과거와의 단절이 절실해

재벌중심 경제체제 극복이 선결과제

25일부터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채택될 정강초안이 최근 공개되었다. 비록 대통령 후보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사실상 확정되었지만, 이 정강 초안은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주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주 40시간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시간당 15달러의 최저임금과 노동조합 조직과 가입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금융자본의 탐욕스러운 지대(rent) 추구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서 고위험의 유사은행업(shadow banking activities)에 대한 규제 강화와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는 대마불사 (too-big-to-fail) 금융기관의 분할 등을 포괄한 금융시스템 개혁 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부자 증세(multimillionaire surtax)와 조세 루프홀(loopholes) 차단을 다짐했으며,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도 약속하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해 이 같은 정강을 실제로 입법화한다면, 1980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더라도 신자유주의는 퇴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샌더스 돌풍과 민주당 정강의 변화 그리고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 등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형성된 기득권과 사회·경제적 모순에 대한 대중의 거부와 새로운 시대로의 담대한 변화에 대한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대중의 불만과 요구가 기성정치체제 안으로 수용되고, 또 이런 정치과정을 통해 정책이 바뀌고 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 정치제도의 역동성과 민주주의의 강건함을 엿보게 된다.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도 과거와 단절하는 담대한 변화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30여년 간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정부주도ㆍ재벌중심의 발전전략이 한계에 도달했음은 이제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에도 이런 정부주도ㆍ재벌중심 경제운용 기조는 바뀌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체제 하의 기득권은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부실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한 공적 자금 투입 과정에 대한 폭로와 조사를 통해,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의 검은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도록 정부가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개발도상기적 사고와, 기득권과 영합하는 관치와 정경유착이라는 이해관계가 만성적 한계기업들을 양산하고 있고, 이는 은행의 부실화로 이어지고 있다. 2014ㆍ15년도 WEF 국제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의 은행건전성이 144개국 중에서 120위로 평가된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은 덮어두고서 은행산업 발전을 위한 육성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재벌 중심의 경제발전 결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심화되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황제경영과 세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합리적 기업경영보다 총수일가의 사익추구를 우선시 하고, 시장경제체제의 근본을 무너뜨림으로써 중소·중견기업들이 중간재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저임금 하청으로 내몰고 있다. 또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도 근본적 왜곡을 초래해,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결국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혁신형 경제로 이행할 수 없고 장기침체에 빠질 개연성이 높다.

담대한 정부개혁과 재벌개혁 없이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우리 정치권은 이런 담대한 변화를 담아낼 준비와 의지가 있는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어떤 정치적 논의도 결국 당리당략일 뿐이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이대로 뒷걸음치느냐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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