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칼럼] 한국의 ‘브렉시트’ 파도 타기

입력
2016.07.05 20:00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영국과 별도 FTA 체결 서둘러야

낙관적 전망에 더 안주하지 말고

한은ㆍ기재부가 선제적 행동해야

‘브렉시트’는 어찌 보면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거부다. 영국은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 지난 43년 간 이룩한 모든 경제발전에 대한 내부 비판에 좀더 주목하기로 결정했다. 세계화와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포퓰리즘이 영국부터 미국에 이르기까지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다. 만약 포퓰리즘이 지금 추세로 확산된다면 수출의존적 한국경제는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증시 폭락과 통화시장의 요동은 브렉시트가 글로벌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잘 보여줬다. 영국과 EU의 결별과정은 향후 수년 간 불확실성을 높일 것이다. 역자산효과(negative wealth effect)와 겹쳐질 불확실성은 소비는 물론, 자본 지출계획을 유보하거나 지연시킬 것이다.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도 예상된다. 영국 재무부는 향후 2년 간 연간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보다 3.6%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기간 EU 성장률 역시 1% 포인트 하락한다. 즉, 영국 말고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폴란드 같은 나라들이 경기침체를 맞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수출은 더 큰 난관에 직면할 것이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들도 문제다. 지금까지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되는 한국 자동차들은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영국에서 무관세로 판매됐다. 하지만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따로 한ㆍ영 FTA가 체결되지 않는 한, 영국에 수출되는 한국 자동차는 10%의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글로벌기업들의 유럽 법인 소재 문제도 발생한다. 한국과 미국의 많은 글로벌기업들이 영어 사용 편의와 비즈니스 친화적 환경 때문에 런던에 유럽 법인 본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런던 말고 EU 지역에 본부를 또 하나 둬야 할지 모른다. 예를 들면 LG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삼성전자는 런던에 각각 유럽 법인 본부를 두고 있지만, 앞으론 각각 현지 법인을 하나씩 더 둬야 해 비용과 운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브렉시트 파장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당장 박근혜 정부는 한ㆍ영 FTA 체결을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다른 수많은 나라들도 영국과의 FTA 체결에 나설 것이다. 게다가 영국과 EU 간의 협상도 바쁘기 때문에 영국 관리들이 한ㆍ영 FTA 추진을 서두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또 브렉시트 파장에 노출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수백 개의 한국 중소기업에 대한 교육과 안내를 서둘러야 한다.

최근 정부와 한국은행은 각각 성장률 전망을 낮췄다. 하지만 이제 브렉시트 파장을 감안해 성장률 전망을 또 다시 낮춰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은 지금까지 지나친 낙관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적잖은 경제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부진의 장기화를 우려해왔다. 브렉시트는 그런 우려의 현실화 가능성을 더 높일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정치, 경제적 충격이 더 많이 닥칠 것이다.

통화정책이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적잖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은은 그 동안 낙관적 경제전망에 안주해 선제적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경제상황에 끌려 다니다시피 했다. 한국 경제 당국이 계속 낙관적 전망에 안주하다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패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RB) 전 의장은 최근 펴낸 저서에서 “통화정책의 95%는 소통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한은에 경기가 침체에 빠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여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브렉시트 파장 및 다른 경제 충격에 대비해 기준금리를 0%까지 낮추고 유동성 공급도 더 늘릴 것을 권한다. 정부 역시 앞으로 닥칠 더 많은 경제 충격에 대비해 늦기 전에 보다 적극적 정책을 펴야 한다.

손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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