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칼럼] 대우조선, 롯데 그리고 시대정신

입력
2016.06.28 20:00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구체적 정책으로 시대정신 드러내야

구조조정이 과거형 답습해서는 안되고

정경유착과 기득권 강화해서도 곤란해

지난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3당 대표 모두 현재 우리사회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유사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내년 대선에서 화두가 양극화 (또는 격차) 해소, 재벌 개혁, 동반 성장, 미래 성장 동력 등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내년 대선 때까지 여야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고 그런 정책의 실효성을 국민 앞에서 입증하는 것이다. 영어 격언 중에 “악마는 세부적인 것에 있다(The evil is in the details)”라는 말이 있다. 여야 대표가 밝힌 3당의 정책 기조가 인기영합적이고 당위론적 구두선에 그치고 마는 선거철 감언에 불과하게 될지, 아니면 한국 경제와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투철한 시대정신의 발로가 될지는 어떤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모든 화두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경제질서와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이며,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반드시 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다.

물론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회가 협력해야 하고, 국민이 함께 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다. 여야가 당리당략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국민에 대한 충정으로 하는 말이라면, 구체적 정책으로 경쟁하고, 국민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정책이 대통령과 국회를 통해 이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전문가들도 여야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공정한 심판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이 이런 역할들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그만큼 절박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우해양조선 등의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롯데그룹 비리 수사에 대한 평가와 정책적 대응이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의 이런 역할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 같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정부의 12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 계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과 전문가들은 조선 3사의 회생가능성을 확신하지 못 하며, 추가적 공적 자금 투입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향후 조선 3사의 수주 전망을 너무 낙관적으로 가정했고, 지난 주 검찰 수사에서 추가로 드러난 5조원 가량의 분식회계도 반영되지 않은 계획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조속히 조선 및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해, 이런 의문점과 정부대책의 합리성을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대우해양조선뿐만 아니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부실화 원인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후 각 당이 추구하는 구조조정 정책 기조가, 국책은행을 동원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이용해 정경유착과 파워 엘리트(power elite)의 지대(rent) 추구가 가능한 관치금융의 구조를 유지하되 앞으로는 잘 감독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인지, 경제성에 기초한 시장중심의 구조조정과 공적 자금 투입에 대한 원칙과 투명성을 확립하는 정책의 대전환을 추구하는 것인지를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지난주 금요일 세계를 강타한 브렉시트로 인해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졌다. 저성장과 경제 불안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선택할지 또는 이를 핑계로 현상 유지를 선택할지 여야 각 정당은 결정해야 한다.

최근 검찰 수사로 알려진 롯데그룹과 총수일가의 비리 혐의는 또 다른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롯데 사태는 계열사와 계열사 간의 거래, 계열사와 총수일가의 거래를 통한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와 정경유착의 완결판을 보여준다. 재벌개혁과 동반성장을 주장하는 여야 각 정당은 롯데그룹의 비리와 문제점에 대해 나름의 판단과 정책적 대응을 내놓아야만 한다. 특정 그룹과 총수일가의 비리로 문제를 국한시키고 넘어간다면, 재벌개혁과 동반성장에 대한 주장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박상인 칼럼/2016-05-17(한국일보)
박상인 칼럼/2016-05-17(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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