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칼럼] 구조조정, 이대로는 안된다!

입력
2016.05.17 20:00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ㆍ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

공적 자금으로 메워서는 안돼

실업ㆍ지역경제 대책 치중해야

3주 전에 ‘구조조정과 민생’이라는 칼럼을 썼다. 이후 해운사들과 조선사들의 부실 채권 규모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실업 및 지역경제 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조조정 정책의 기본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하고, 부실화한 채권은행들의 자본 확충 방안에 대한 여론의 동향만 살피고 있는 듯하다. 이대로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정부의 이런 소극적 자세는 국책은행을 동원해 초래한 관치금융의 폐단을 은폐한 채, 공적 자금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을 확충해 급한 불이나 끄고 보자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소야대 정국과 내년 대선까지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책임회피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해운 및 조선 산업뿐만 아니라, 철강ㆍ건설ㆍ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인해 한국경제가 험난하고 긴 구조조정의 터널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원칙한 태도는 종국에는 국가 경제에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해운 및 조선 산업에서 구조조정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는 한국경제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그런데 과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문제의식과 절박감을 가지고 구조조정 정책에 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구조조정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재정으로 채권은행의 부실을 메워주고, 채권은행은 부실기업의 부채를 탕감해 주고, 부실기업은 연명하고 대주주와 경영자는 자리를 보존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기업 부실의 책임과 부담을 국민, 국책은행, 주주, 대주주가 지는 순서로 구조조정이 이뤄졌으며, 이는 결국 대주주, 경영자 그리고 국책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왔다.

이런 방만한 구조조정이 재정위기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한국경제가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유지한 기간에 산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조정 방식이 반복되면, 향후 한국경제는 재정위기와 외환위기라는 산사태로 구조조정의 터널에 매몰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재편을 통해 한국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책은행의 자본손실을 공적 자금으로 보충해 줘서는 안 된다. 이는 채권은행으로서 국책은행의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수 있다. 또한 국책은행이나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재편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관료가 주도하는 사업재편은 효율성이나 시장성보다 로비와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의 생존가능성과 미래 수익성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투자자들과 전문경영인들이다. 이들이 수익률에 기초해 사업재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 이들을 대체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책은행이 주도하는 공적 자금 투입의 대안은 2009년 미국 정부의 GM 구조조정 사례이다. 즉, 기존 기업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업을 설립한 후, 정부가 새 기업에 출자하는 형태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고용승계와 자산승계 그리고 사업재편을 맡기는 것이다. 이 경우 공적 자금 투입의 비용과 사회적 편익을 계산할 수 있어 정부 정책에 대한 분명한 평가와 책임소재가 가능하게 되며, 사업 재편 역시 시장이 주도하게 된다.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은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과 같은 꼼수가 아니라 실업 및 지역경제 안정화 대책이다. 부실기업 지원의 변으로 실업문제를 강조했던 정부가 진정 실업 및 지역경제 피폐화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행동과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정부가 구조조정을 통한 재도약의 청사진을 제시해야만 구조조정의 비용과 고통을 국민들이 함께 부담하고 감내할 수 있다.

박상인 칼럼/2016-05-17(한국일보)
박상인 칼럼/2016-05-17(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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