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는 MLB의 한국야구 ‘깔보기’

입력
2016.04.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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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김현수. 연합뉴스
볼티모어 김현수. 연합뉴스

최근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의 포스팅 금액(비공개 경쟁입찰) 상한액을 일본프로야구의 40% 수준에 불과한 800만달러(약 93억8,000만원)로 책정해 국내 야구계가 공분했다. 포스팅 금액이란 자유계약(FA) 신분이 아닌 선수를 MLB 구단이 영입할 경우 선수의 소속 구단에 지급하는 이적료다. 2012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의 포스팅 금액은 2,573만7,737달러, 강정호(피츠버그)는 500만2,015달러, 올해 MLB에 데뷔하는 박병호(미네소타)는 1,285만 달러인 점에 비춰 800만 달러 책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일본과 MLB사무국은 2013년 포스팅 금액 상한액을 2,000만 달러로 정했다.

올해로 35년째를 맞는 한국 프로야구는 80년 된 일본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 2006년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과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 지난해 열린 초대 프리미어12 우승 등 2000년대 들어 굵직한‘A매치’에서는 일본과 대등한 수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 투수 역시 한국인 박찬호(124승)이며 올 시즌에도 최대 10명이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밀 만큼 최근 페이스는 오히려 일본을 능가한다. 일본 선수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포스팅 금액은 다분히 객관성이 결여된 처사이며 그로 인해 한국 야구는 자존심에 적잖게 타격을 입었다.

‘김현수 사태’는 여기에 더욱 불을 지폈다. 김현수(28ㆍ볼티모어)는 신고 선수 신화의 주인공으로 국내 무대를 평정한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 선수다. 소속팀 두산의 구애를 뿌리치고 꿈을 위해 태평양을 건넌 김현수는 이제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한국 야구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김현수가 볼티모어에서 마치 두산에 처음 입단할 때처럼‘신고 선수’ 취급을 받고 있다.

볼티모어는 시범경기 타율 1할7푼8리에 그친 김현수를 전력 외로 구분했다. 김현수는 지난 겨울 2년 총액 700만 달러(약 80억6,400만원)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서에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넣었다. 볼티모어 구단은 김현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구단과 벅 쇼월터(60) 감독은 공개적으로 김현수의 부진을 비난하면서 마이너리그행이 기정 사실인 것처럼 발표해 버렸다. 쇼월터 감독은 지난달 30일 “김현수를 개막 25인 로스터에서 빼겠다”면서 “여기(메이저리그)에는 김현수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있고, 우리는 최고의 선수들로 25인 로스터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결정권이 김현수에게 있는 걸 알면서도 고의적인 압박성 발언이었지만 김현수는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일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도전 하기를 원한다”고 에이전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김현수는 측근을 통해 “지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해설위원은 “외야 자원이 빈약한 볼티모어가 뭘 믿고 김현수를 홀대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마도 한국 야구를 무시하고 조급해하는 구단의 성향인 듯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볼티모어는 2년 전에도 윤석민(30ㆍKIA)을 영입했다가 메이저리그 입성 기회를 주지 않고 끝내 스스로 방출을 택하게 했으며 2011년에는 정대현(38ㆍ롯데)과 계약에 합의했다가 메디컬테스트를 문제 삼아 입단 자체를 취소했다.

롯데에서 해외 스카우트 코치로 활동 중인 라이언 사도스키(34)는 트위터를 통해 “김현수가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이는 건 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같다. 볼티모어는 선수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 차라리 다른 팀 마이너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볼티모어에게 복수해주길”이라며 볼티모어 구단을 비판했다. 메이저리그의 간판급으로 자리잡은 추신수(34ㆍ텍사스)도 “선수가 10년간 쌓은 경력을 16경기만 보고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볼티모어의 도를 넘은 한국 야구와 한국 선수 홀대에 맞선 ‘김현수의 마이너 거부권’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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