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방담(政街放談)] “거물들, 경선 고통 감수하며 험지 가겠나”… 새누리의 딜레마

安신당에 중도층 공략 숙제 부상

갈수록 힘받는 거물 험지 출마론

여야 후보간 대진표까지 거론 불구

김무성 “전략 공천 불가” 방침과 배치

안대희, 장고끝 “당의 뜻 따르겠다”

오세훈,김황식, 조윤선 등 행보 주목

지난달 23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안 전 대법관의 모습. 새누리당에서 험지출마론이 급부상하자 부산 해운대에서 긴급 상경한 안 전 대법관은 22일 김무성 대표를 만나 “(총선 지역을) 당이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을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 속에서 치르게 됐음에도 소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른바 ‘거물 험지 출마론’ 때문이다. 지도부가 거물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험지 출마를 독촉하고 있지만 속사정이 여의치는 않다. 특히 김무성 대표가 외쳐온‘NO 전략공천’방침이 험지출마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볼멘 소리가 적지 않다. 22일 안대희 전 대법관이 지도부의 험지 출마 요구를 사실상 수용하면서 다른 거물들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안대희 vs 김한길, 조윤선 vs 박영선 대진표까지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중도보수표가 이탈하는 조짐을 보이자 험지 출마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험지 출마를 요구받고 있는 인사들은 안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인데 모두 대중인지도가 높고 보수 색채가 짙지 않아 중도층 공략에 적합하다는 논리도 탄탄하다. 하지만 이들이 출마하려는 지역은 부산 해운대, 서울 종로, 서울 서초갑 등으로 새누리당의 대표적 양지다.

때문에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 현역 의원과의 구체적인 대진표까지 거론됐다. 21일 최고위원회의 전 비공개 티타임에서 최고위원들은 “안 전 대법관은 김한길 의원(서울 광진갑)과 붙고 조 전 수석은 박영선 의원(서울 구로을)과 겨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지역은 새누리당에겐 대표적 험지다. 22일 김무성 대표는 ‘공천제도특별위에서 험지 차출 여부도 논의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든 걸 다 논의할 수 있다”고도 했다.

험지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당 안팎에선 ‘거물들에게 험지 출마를 강요할 수단이나 있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표가“전략공천은 없다”고 단언한 상황에서 어느 거물급 인사가 당내 경선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며 험지에 출마하겠느냐는 이의제기다. 수도권 출신 의원은 “전략공천 불가 방침이 유명인사의 험지 출마 요구는 물론 참신한 인재 영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외부에서 인재 추천의 뜻을 타진해오기도 하지만, 공천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전략공천 불가 방침 고수가 되레 당에 새로운 인재를 끌어들이는 길을 막는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험지출마 대상들 거절 쉽지 않을 것”

당내에서는 험지 출마를 압박받는 인사들이 지도부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안철수 신당이 인재 영입에 성공해 수도권 중도표 확보에 비상이 걸릴 경우, 험지론은 총선 필승 전략으로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며 “당의 명운까지 운운하며 압박이 커지면 결국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전 대법관이 장고 끝에 “당에서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며 험지 출마 요구를 사실상 수락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다른 거물들은 더욱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안 전 대법관은 지도부에서 험지론이 본격 제기됐던 21일 황급히 상경했다가 이날 김 대표를 만나 “당의 결정을 따르겠으나 현재 출마를 검토 중인 해운대도 고려 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뜻을 전했다. 김 대표는 조만간 오 전 시장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의 거물 정치인을 만나 험지 출마를 설득할 예정이어서 상황은 매우 흥미로운 단계로 접어들 수도 있다.

역대 선거를 보면 거물들이 험지 출마를 마냥 거부할 일도 아니다. 결심하기가 어렵지 험지에서 승리만 하면 희생정신에 대한 평가와 함께 단박에 ‘중량급 정치인’으로 부상하는 프리미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지난해 7ㆍ30 재보선에서 동작을에 출마해 3선 여성의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나경원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