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호의 매체는대체] 차단 삭제 장려하는 세상

입력
2015.12.13 10:33

인터넷에는 발언이 많다. 그런데 인터넷은 실세계 다음으로 험악한 곳이라서, 그 중 일부는 누군가는 싫어할 만한 공격적 내용이다. 다시 그 중 일부는, 상대의 위상이나 인격을 부당하게 훼손한다. 그 중 마지막 범위만 규제해야 할 대상인데, 앞의 두 범위의 발언들은 건강한 민주제의 의견 충돌과 조율을 위해 용납 내지 장려되어야 할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지막 범위에 속하는지 경계를 짓기 쉽지 않은 사례들이 당연하게도 매우 많다. 따져보면 두 번째 범위 정도에 속하는 발언이라도, 자기가 편드는 쪽에 가해지면 명예훼손이라고 여기고, 내가 욕하는 쪽에 대해 가해지면 평범한 발언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필요한 말들을 위축시키지 않되, 부당한 명예훼손은 잘 골라내 규제하는 고도의 기술이야말로 미디어 정책의 최고 경지다. 정반대편은 무차별 삭제와 접속차단을 마음껏 장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격 당한 당사자가 나서지 않아도 특정 세력 눈치를 보며 심의 당국이 직권으로 삭제 조치를 한다든지 말이다. 혹은 뻔히 수상쩍은 반사회적 집단이 보낸 대규모 차단 요청을 받고도, 당국이 심사에 들어갈 것임을 알기에 서비스업체가 따지지 않고 처리한다든지 말이다. 심사당국 또한 넘치는 민원 앞에서 세부적으로 분석할 행정 여력을 잃고는, 차단을 남발할 수 있겠다. 바보가 아닌 사용자들은 당연히 해외에 기반을 둔 서비스로 몰려가고, 국내 서비스에는 아예 아무런 책임의식 없이 지워지든 말든 쌍욕을 남기는 사람들, 그리고 의미 없는 “선플”을 다는 사람들만 남는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생생하게 한숨이 나온다.

며칠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인터넷의 명예훼손성 글에 대해 제3자 신고 또는 직권으로도 삭제ㆍ접속 차단 등을 심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이미 명예훼손이 형사법상 반의사불벌죄인데, 자신들은 그간 친고죄처럼 운영했기에 맞춰놓아야 한다는 이유다. 권력 비판의 목소리를 묵살할 것이라고 수개월 동안 많은 이들이 열심히 비판했더니, “공적 인물”의 범주를 규정한 후 그들에 대해서는 원래대로 당사자나 대리인만 할 수 있도록 유지했다. 공인의 범위에 “언론에 공개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 등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도 들어갔다.

어차피 심의 대상에 대해 그렇게 마음껏 자체 규정을 둘 수 있으면서 대체 왜 바꿔야 하는가. 서비스업체까지 한층 적극적으로 엮이는 위축 효과에 대한 대책, 심사 역량과 효율을 키울 획기적 방법은 준비하고 강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대충 달리는 것인가. 게다가 제3자가 제기해야 한다면 수사권을 바탕으로 조사 후 기소를 결정하는 검경을 통해서 할 수도 있다. 명예훼손에 형사 처벌을 가하는 현행 제도 자체의 단점,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 규정의 위축 효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은 뒤로 미뤄둬도 말이다.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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