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정조는 즉위년(1776) 6월 25일 검찰총장격인 이해중을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 보내면서, “나경언의 옥사 때 청대(請對ㆍ급하게 임금 뵙기를 청함)했던 마음 같았다면 감히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꾸짖었다. 대사헌에 임명한 지 닷새만의 일이다. 나경언을 언급한 것은 “나는 네가 임오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뜻인데, 임오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해다. 대리청정하던 세자를 고변한 나경언에 대해 실록은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꾀어냈다. 가산(家産)을 망쳐서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영조실록’ 38년 5월 22일)고 전하고 있다.

평민 나경언의 고변서를 처음 접수한 당사자가 형조참의 이해중이었다. ‘영조실록’은 “이해중이 영의정 홍봉한에게 달려가 고하니 홍봉한이, ‘청대(請對)하여 계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고, 이해중이 세 차례나 청대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해중은 홍봉한의 부인 한산 이씨의 동생으로서 사도세자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외삼촌이다. 이해중은 고변서를 받자마자 보고 계통을 무시하고 자형(?兄) 홍봉한에게 달려갔고 홍봉한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빨리 임금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정조가 이해중을 꾸짖은 것은 대사헌으로서 홍봉한ㆍ홍인한 형제같은 거악(巨惡) 탄핵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였다. ‘나경언’을 비유한 것은 네가 홍봉한과 함께 내 부친을 죽이는데 가담한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야유였다.

정조 즉위 직후 홍봉한 탄핵 상소가 쏟아졌다. 동부승지 정이환은, 세자 살해에 가담한 ‘화완옹주의 양자 정후겸’보다도 홍봉한이 반드시 죽여야 할 더 큰 역적이라고 지목했다. 정이환은 “홍봉한의 천만 가지 죄악 중에서 가장 크고 극악한 죄가 바로 임오년에 범한 죄’라면서, 일물(一物), 즉 뒤주를 홍봉한이 올렸다고 폭로했다”(‘정조실록’ 즉위년 3월 27일). 이는 새삼스런 폭로가 아니었다. 영조 47년(1771)에도 청주 사람 한유(韓鍮) 등이 도끼를 들고 대궐문에 엎드려 홍봉한이 목기(木器ㆍ뒤주)를 올려 세자를 죽였으니 목을 베야한다고 상소했다가 되레 사형 당했다.

노론 영수 홍봉한은 세자가 뒤주에 갇혀 신음하던 영조 38년(1762) 윤 5월 17일 소론 영수였던 전 우의정 조재호(趙載浩)를 죽음으로 몰았다. 조재호가 “한쪽 사람들(노론)이 모두 소조(小朝ㆍ세자)에 불충하였으나 나는 동궁(東宮ㆍ세자)을 보호하고 있다”(‘영조실록’ 28년 6월 22일)고 말했다는 이유였다. 야당 영수 조재호가 “나는 동궁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사형 당한 이 사건이 사도세자 살해 사건의 근본적 프레임을 잘 보여준다.

거대 수구집권세력의 개혁세력 제거작전의 희생양이 사도세자였다. 홍봉한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상소가 쏟아지자 정조는 ‘홍봉한에게 극률(極律ㆍ사형)을 내리면 자궁(慈宮ㆍ혜경궁)께서 불안해하시고 자궁께서 불안해하시면 나도 불안하다(‘정조실록’, 즉위년 3월 30일)’는 논리로 죽이지는 않았다. 대신 동생인 좌의정 홍인한을 죽이고 홍씨 집안을 조정에서 축출하는 것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부친의 영혼을 위로했다. 혜경궁 홍씨가 나중에 ‘한중록’에서 ‘사도세자 사건은 정신병자인 사도세자와 정신병자에 가까운 영조가 충돌한 결과이지 우리 친정은 책임이 없다’고 구구절절 변명했던 것은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친정을 신원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실제 생존했던 인물들을 그릴 때는 실제 행적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 우리처럼 시대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살아갔을 선인들의 인생과 역사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사도’는 놀랄 정도로 사실과 너무 다르다. 수구세력에게 살해당한 사도세자를 아무나 마구 죽이는 미친 살인마로 둔갑시켰고, 세자 살해의 주범 홍봉한은 세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장인으로 변개시켰고, 나경언은 사도세자가 여동생인 궁녀를 죽여서 고변하는 인물로 창작했다. 심지어 영조가 생명의 은인이었던 대비 인원황후 김씨와도 대립하는 것으로 거꾸로 묘사했다.

자극적 장면의 연속이지만 영화 ‘암살’같은 감동을 느꼈다는 사람이 드문 것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자체가 없거나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을 팔아 넘긴 마지막 노론 당수 이완용이 고종에게 사도세자 살해에 가담한 정후겸의 신원을 여러 차례 요청한 데서도 이 사건의 본질은 명확하다.

지금의 국정 국사교과서 논쟁처럼 역사 왜곡이나 조작에는 반드시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이득이 있는데 이 영화는 무엇을 위해 역사왜곡의 길을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때마침 ‘300년 전 죽은 세자를 위한 진혼곡’이란 머리말과 함께 1차 사료를 토대로 사도세자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 김수지의 ‘영조와 사도’라는 책이 나왔다. 사실 자체를 조작하려는 거대한 구조에 맞서 한 사람이 외롭게 진실을 외쳐야 하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도 묻고 있는 듯 하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api_db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