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中 전승절 참석 여부, 美·中·日 미묘한 입장차

입력
2015.08.12 16:54

美 "포커페이스 하는 게 미덕" 불편한 속내

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할 건가" 자존심 자극

日 "정상회담·위안부 문제 등에 악영향" 압박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0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기 위해 다가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0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기 위해 다가서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다음달 3일 열릴 ‘항일 및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놓고 미국 중국 일본의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결정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고민이 점점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12일 관영언론의 입을 빌려 박근혜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상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해야 할 5가지 이유를 들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고 ▦양국이 2차 대전 중 함께 항전한 점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했다. 이어 “한국에 대해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외부의 압력이 있다”며 “박 대통령이 이런 압력에 굴복한다면 한국 자주성을 속박하는 하나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이 한미동맹을 고려해야 하는 점은 이해하나 한미동맹이 그렇게 약하진 않다며, 열병식에 참석하더라도 한미동맹에 손상이 가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사설은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강하게 희망하는 중국 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굴복’ ‘속박’등의 용어로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은 도가 지나친 무례란 지적도 나온다.

겉으로는 ‘주권적 결정사항’이라고 선을 긋지만, 미국 국무부 안팎에서는 망설이는 한국에 대해 서운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11일 오후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한국 취재진이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에 대한 미국 정부 입장을 묻자, 마크 토너 국무부 부대변인이 “처음 듣는 일”이라고 대답한 것. 미 국무부는 결국 브리핑이 끝난 뒤 별도 논평자료를 내놓는 식으로 북한을 규탄했다. 미 국무부가 그 동안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에 대해 거의 즉각적으로 북한을 비판해왔고, 전날 미 국방부도 ‘정전협정 위반’으로 북한을 규탄했던 것에 비춰보면 이날 반응은 이례적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게다가 토너 부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여부에 대해) 미국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형태나 방법으로도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있고, 가한 적도 없다”고 해명한 뒤, “포커페이스를 하는 게 미덕”이라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미국이 ‘주권적 결정사항’이라는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속내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박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가까이 다가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라며 주목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이날 한국 국내여론은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찬성이 앞서지만 미ㆍ중 사이에 붙잡혀 고민에 빠져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박 대통령이 대규모 군사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베이징 열병식장에서 시진핑 주석의 근처에 설 경우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을 피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니케이는 특히 ‘항일’을 표방한 행사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면 일본 내 반한(反韓)감정이 높아져 한일정상회담 연내 성사는 물론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남북 최고지도자 2명이 베이징에서 만나게 될 경우의 대비책 등 새로운 과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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