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지시해야 국정원 의혹 규명 가능할 것

입력
2015.07.24 18:04

국가정보원 휴대폰 불법 해킹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사실상 시작됐다.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할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씨 등을 새정치민주연합이 고발한 사건과 관련, 검찰이 수사 주체를 결정한 뒤 자료 검토 등 본격 수사에 착수키로 한 것이다. 지난 9일 국정원의 불법 해킹 의혹이 국내에 처음 보도된 지 보름만이다.

야당은 고발장에서 국정원이 정부 허가 없이 원격조정시스템(RCS)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하고, 스파이웨어를 스마트폰에 심은 뒤 개인정보를 빼내 정보통신망법도 위반한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이 같은 고발 내용에만 국한될 수 없다. 해킹 프로그램 도입과정, 해킹 프로그램 운영, 책임소재 등 국정원 해킹 활동의 전반을 확인해야 불법성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킹을 통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여부를 가리는 게 수사의 핵심이다. 안보상 어디까지 공개할지 판단은 또 다른 문제다. 야당은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SK텔레콤 가입자의 IP주소 3개를 공개한 데 이어 어제는 해킹 시도가 있었던 IP주소 5개를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카카오톡 해킹 가능성을 타진한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등 민간인 사찰을 의심할만한 정황 증거도 여럿 있다.

관건은 역시 검찰의 수사 의지와 속도다. 벌써부터 검찰은 언론의 의혹 보도만 있을 뿐 범죄 단서가 될만한 내용이 없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기 힘들다며 움츠리는 모습을 보인다. 또 국가기밀을 다루는 정보기관 대상 수사라는 점, 국정원직원법상 국정원직원 조사는 국정원장 허가사항인 점 등 현실적, 제도적 어려움도 거론한다. 이해 못할 바 아니나 그럴수록 신속하고도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 이미 SK텔레콤 로그기록 보관기한 만료일이 한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더딘 수사는 증거 인멸이나 관련자들의 진술 꿰맞추기 개연성을 높이는 법이다. 수사가 소극적으로 비쳐질 경우 이후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든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국정원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지시해 신속한 진상 규명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또 타당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해 침묵보다는 적극적 대응으로 불필요한 오해나 억측을 잠재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게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누그러뜨리고 궁극적으로 국가안보를 더 굳건히 하는 길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의 철저한 수사 및 국정원 협조를 지시함으로써 실체를 규명했던 전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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