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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TV의 한 음악프로그램이 있다. 가수부터 배우까지 독특한 가면을 쓴 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오직 노래실력만을 경쟁하는 토너먼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가면 만이 아니라 장갑을 끼거나 가발을 쓰는 등 모습을 꽁꽁 숨기고 노래만으로 승부한다.

평가를 하는 연예인 판정단은 목소리와 체격, 노래할 때의 행동 등을 유심히 관찰하며 가면 뒤의 정체를 밝히려 애를 쓴다. 시청을 하는 입장에서도 멋진 노래솜씨를 들으며 동시에 복면 뒤의 모습이 과연 누구일까,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 얼굴이 공개되면 깜짝 놀랄만한 반전에 그 재미는 몇 곱절이 된다.

며칠 전 한 출연자는 걸 그룹의 멤버였다. 평소 노래실력보다는 예쁜 용모로 귀여운 이미지를 담당할거라 생각했지만, 복면 뒤에 감춰진 그녀의 진실은 어느 솔로 가수 못지않은 훌륭한 가창력의 소유자였다. 또한 굵은 중저음의 남성미 가득한 목소리로 실력을 뽐낸 출연자가 있었는데, 그가 가면을 벗자 평소 여성스런 하이 톤의 목소리로 코믹한 이미지를 보여주던 연기자여서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우리가 놀라운 반전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평소에 목소리보다 시각적인 것에 집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가수의 본질은 청각에 호소하는 일인데, 우리는 가수의 얼굴과 몸짓, 화려한 의상과 그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조명과 무대를 비롯한 시각적인 것에 치중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의 음악은 어릴 적 주로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음악과 다르다. 음악이 흐르면 눈을 감거나 창 밖을 바라보며 귓전을 두드리는 음악에 심취하던 때와 다른 것이다. TV의 화면크기는 점점 커져가고, 전화가 진화한 스마트폰도 시각적인 미디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가수의 노래만이 아니라 가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눈에 담기 위해 우리는 화면 가까이 더 다가가게 된다.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본다는 말이 더 적합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점차 더욱 거대해지고 화려해지는 스펙터클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다. 스펙터클은 라틴어로 “바라봄”의 뜻을 가진 스펙타쿨룸에서 온 단어로, 화려한 볼거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스펙터클은 여느 감각에 비해 가장 신비화되기 쉬운 감각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시각적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무조건적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현대사회의 스펙터클은 영화나 쇼 오락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뿐 아니라 요리, 패션, 건축 등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기능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너무 시각적인 것을 중시하다 보면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난 것이 곧 본질이라는, 착각을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늘 첫인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처음 형성된 이미지는 그대로 실상을 대처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 첫인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시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 S라인, V라인, 얼짱, 식스팩 등의 말들은 피상적 면모에만 집중하여 만들어 낸 부산물들이다. 그 결과 외모지상주의, 성형왕국이니 하는 말까지 성행한다. 보이는 것 이면의 봐야 할 것에 도리어 눈을 감는, 인위적 시각장애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거꾸로 눈을 감아 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숲을 거닐 때 눈을 감고 맨발로 걸으며 새의 지저귀는 소리, 발바닥에 밟히는 흙의 질감, 청정한 숲의 향과 그 숲이 만들어진 공기를 혀로 감아 마시면서 무너져 내렸던 느낌의 세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온갖 장치에서 해방되는 순간, 우리의 시각은 애초의 능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른 말을 우리에게 걸어올 것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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