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향기] 싱글로 5월을 산다는 것

입력
2015.05.17 16:56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 하지도 않은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젊은 시인 오은은 이렇게 반문했다. 나도 5월이 오면 묻고 싶어진다. “가정의 달에 가정이 없는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라고.

가족을 강조하는 온갖 문구가 넘쳐나는 5월은 싱글에게 잔인한 달이다. 안 그래도 심란한 5월인데 얼마 전에 본 영화 한 편은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줄리안 무어가 50세의 나이에 알츠하이머를 앓는 역할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스틸 앨리스’. 대학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나에게 저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돌봐줄 가족도 없이, 든든한 연금 같은 것도 없이 겨우 살아가는 내가 어느 날 치매에 걸린다면? 그 후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연고자를 위한 허름한 시설에 갇혀 찾아오는 이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날 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처럼 혼자 살아가는 여자들이라면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마트에서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온 또래의 여성을 보며 ‘다들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데 나는 뭐가 잘못된 걸까’ 흔들렸던 휴일이. 아무도 없는 빈 집의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일이 힘에 부쳐 자꾸만 귀가를 미루던 쓸쓸한 저녁이. 혼자 먹는 밥이 새삼스레 목에 걸려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넘겨가며 함께 밥을 먹을 친구를 찾던 주말이. 단지 여자들만이 아니라 비혼, 이혼이나 사별, 기러기 아빠 같은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살아가는 남자들에게도 무수히 외로운 순간이 찾아왔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싱글로 산다는 일은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처량한 삶이기 쉽다. 개인의 의지로 싱글의 삶을 선택한 이들도 있지만 결혼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싱글도 많다. 고소득 전문가보다는 나처럼 불안정한 프리랜서 혹은 계약직이 다수일 것이다. 저마다 이유와 처지는 다르지만 ‘싱글족’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500만에 이르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족 중심으로 돌아간다. 동네 슈퍼나 시장에서는 채소나 생필품을 소포장으로 사기 어렵고, 식당에 들어가 삼겹살 1인분을 주문할 수도 없다. ‘생애 첫 주택 대출’을 비롯한 각종 금융 지원이나 세제 혜택도 결혼한 이들 위주다. 4,400개에 이르는 법령 중에 1인 가구에 관한 법령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싱글족은 기업의 소비 대상이 되어 ‘구매력을 가진 신소비층’으로 떠받들어지거나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아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이기적인 이들로 비난 받기 쉽다.

내 주변에는 비슷한 처지의 싱글이 꽤 많다. 자유로운 삶이 주는 여유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담과 건강 및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혼자 떠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커가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종종 이야기한다. 고독사 하는 독거노인이 되지 않도록 서로 돌봐주자고. 다들 혼자 살아와서 개성이 강할 테니 독립공간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대신 마당을 공유하는 집을 짓자, 사흘에 한 번씩 살아있는지 생사 확인 전화를 하자고 말한다. 불안정한 수입으로 연금을 들고, 저축을 늘려나가는 일이 대안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싱글들이 크고 작은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함께 모여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주거 공간을 나눠 쓰기도 하고, 일상의 활력이 될 소소한 이벤트를 함께 꾸린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삶의 방식은 짧은 시간에 급격히 바뀌었다. 이제는 4인 가족이나 3인 가족이 가정의 기본 모습이라는 환상을 국가가 포기해야 하는 지점에 선 것이 아닐까.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가정만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그 지점이 우리의 출발선이 되기를 바란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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