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향기] 새의 선물

입력
2015.05.14 11:22

청계천변 뚝방 우리 집엔 매년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지었다. 환경오염이 심하지 않아서였는지 날아다니건 전기 줄에 앉아 있건 제비를 흔하게 볼 수 있던 시절이다. 봄이면 부엌 들어가는 문지방 위쪽의 연두색 채양 아래에 집을 짓기 위해 부산하게 나뭇가지, 진흙 등을 물고 다니는 제비의 모습이 신기했다.

제비가 알을 낳을 무렵이면 둥지 쪽을 쳐다보지도 말라는 어머니의 엄명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멈추기는 쉽지 않았다. 다락에 몰래 올라가 좁은 창문 틈 사이로 알에서 갓 나온 빨간 새끼들이 어미가 물고 온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서로 입을 쩍쩍 벌리는 모습을 훔쳐보곤 했다. 어느 날 어미 제비가 창문 쪽을 자꾸 바라보더니 새끼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쳐내 죽여 버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조심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어긴 탓이다. 어쨌든 매년 제비가 둥지를 짓는 우리 집은 동네에 ‘제비가 알아보는 좋은 집’으로 소문이 났고, 또래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였음은 물론이다.

재키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1963년 케네디 암살 이후 그리스의 거부 오나시스와 결혼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혼한지 10년이 못 되어 오나시스가 죽자 다시 미망인이 된 재키는 뉴욕에서 출판 관계 일을 하며 지냈는데 새벽이면 홀로 주변 공원과 거리를 산책했다. 일생 동안 재키의 사진을 줄곧 찍어 온 사진작가는 재키의 동선에 미리 새 먹이를 뿌려 놓아 재키가 산책을 할 때면 어김없이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한다. 어스름한 새벽에 홀로 산책하는 재키 주변에서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은 적절한 ‘그림’이 되었고 재키에의 연민을 높여 주었다. 20세기에도 신화는 이렇게 창조되나 보다.

우리 아파트 창가로 새들이 종종 날아오기에 베란다의 돌출된 작은 턱 위에 새 먹이를 놓았다. 작년 봄부터 저번 주까지 쌀, 보리 등을 매일 몇 줌씩 주었으니 벌써 1년이 되었다. 집에 있는 날이면 아침, 점심, 저녁 골고루 주기도 했다. 어쩌다 모이를 미리 두지 않을 때면 새벽부터 먹을 것 달라는 참새들의 성화에 깬 적도 여러 번이었다. 주로 참새들 천지였지만 비둘기, 까치, 직박구리 또 이름 모를 새들도 날아왔다. 베란다에 모여드는 새들을 보며 어릴 적 뚝방 집 제비와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흐뭇해했다. 조금 과장하면 나는 새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적선을 행하는 것 같았고, 새들은 내게 평화와 안정감을 선물한 기분이었다.

전 주의 일이다. 경비실을 지나치는데, 경비아저씨가 정색하며 부르시더니 “혹시 새 모이를 주느냐”고 물으셨다. 갑작스런 물음에 말문이 막혔는데 몇 말씀 더하셨다. “000호에서 새똥 때문에 난리가 났고, 조금 있다가 동대표께서 올라가실 것”이라는 말씀에 잠시 넋이 나갔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동대표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포는 극에 달했다. 다시는 새 모이를 주지 않을 것이니 제발 그 일 만은 막아달라고 사정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올라온 후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상상을 했다. 동대표 아줌마의 살기 어린 표정과 쏘아붙이는 말 앞에 쩔쩔매는 나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등등 골치가 지끈거렸는데 경비 아저씨의 중재로 동대표는 오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니 전후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새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게 된 것은 나의 박애주의 탓이 아니라 어릴 적에 새가 오는 집은 좋은 집이라는 주변의 칭찬이 뇌리에 박힌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집을 남 보기에 좋은 집으로 연출하려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줄 피해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비, 적선, 평화, 마음의 안정 등등 제 눈에 안경 식의 싸구려 감상은 집어치우고 주변이나 잘 돌보라는 교훈을 얻었다. 진정한 새의 선물은 이것인가 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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