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칼럼] 선진국은 밤이 길다

입력
2015.04.14 15:04

한국 직장인들 '고달프고, 불쌍한'

일보다 삶 권할 때 더 성과 향상

선진국처럼 일과 가정 조화시켜야

직장인은 스스로를 ‘소(牛)’라 여긴다. 일만 하는 순종적이고 약한 존재로 반복일상을 눈치껏 끈질기게 버텨 내서다. 단순ㆍ미련한 직장생활의 푸념비유다. 서글프고 안타깝다. 직급이 낮을수록 초식(草食), 높을수록 육식(肉食)동물로도 나뉜다. 직장인을 꾸미는 말도 우울하고 먹먹하다. ‘고달프고, 피곤하며, 지쳐있는, 불쌍한, 바쁜, 걱정 많은, 변화 없는, 돈 못 버는’ 등이 톱 10이란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직장인의 사적 생활은 없다. 싱글은 연애가 어렵고 부부는 대화가 막혔다. 가족은 얼굴조차 생경하다. 밥상머리 교육은 해본 적이 없다. 무늬만 가족이다. 엄정한 호구지책의 난센스다. 다들 그러려니 싶지만 분노와 우울은 비켜서지 않는다. 켜켜이 쌓여있을 뿐이다. 주말이라고 좋을 건 없다. 부모 노릇은 절대피곤 앞에 무릎 꿇기 일쑤다. 애는 애대로 슬프고 아프다. 일 권하는 사회, 그 악순환의 반복풍경이다. 저녁 있는 삶이 간절한 이유다.

차압인생은 개별이슈를 넘는다. 길게는 한국사회를 고립ㆍ분열절벽으로 내몬다. 가족의 연대훼손은 최소공동체의 붕괴신호다. 따로 밥 먹는 식구(食口)라면 핵분열처럼 쪼개지고 약해지게 마련이다. 관계소원ㆍ가족갈등의 시작이다. 이는 사회전체의 대립ㆍ갈등불씨로 번진다. 소통ㆍ치유공간의 부재 탓이다. 후속세대에겐 더 큰 학습효과를 남긴다. 연애ㆍ결혼의 생애이벤트를 연기ㆍ포기할 동기부여다. 해봐야 가족행복을 위한 자신감은 별로다. 눈앞의 빈곤사슬을 넘기기조차 벅찰 뿐이다.

결혼해도 출산은 없다. 맞벌이가 상식인 판에 자녀의 양육공포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낳아도 기를 수 없다는 걸 곳곳에서 봐왔기에 고민은 없다. 강제적인 본능포기의 유도다. 길은 두 갈래다. 회사 혹은 가족이다. 기회비용은 가족카드를 택할 때 커진다. 회사를 놓기란 그만큼 힘들다. 둘을 다 가지자면 욕심이다. 아쉽게도 ‘일하는 엄마’는 시대가 낳은 천덕꾸러기다. 슈퍼우먼은 몇 없다. 대개 출산ㆍ양육 때 경력단절이 불가피하다. 일을 놓지 않으려면 애를 낳지 않는 수밖에 없다.

선진국은 밤이 길다. 그 밤은 또 ‘집에서’다. 저녁시간은 ‘집에서 가족과’가 일상적이다. 일 벌레가 있지만 상식적인 공감대는 가족우선이다. 정시퇴근을 지키고자 근무시간의 낭비를 최소화한다. 한국적 회사인간의 회식문화란 없다. 물론 시대는 변한다. 초식직원이 늘자 회식문화가 바뀐다지만 일부 얘기다. 생사여탈권을 쥔 쪽은 여전히 저녁반납을 요구한다. 사축(社畜)인생의 정시퇴근은 희망사항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 과로국가 일본을 제치고 노동시간 1위에 오른 배경이다.

한국사회의 차기 주자인 후속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다. 어떤 대안도 장기ㆍ안정적인 고용확보보다 순위가 뒤진다. 양질의 일자리야말로 지고 지순한 추구가치다. 동시에 이를 빛내주는 기술적인 운영묘미가 저녁이 있는 삶의 보장여부다. 일자리가 좋아도 왜곡·운영되면 의미는 반감된다. 회사를 위해 충성하던 때는 지났다. 요구한들 먹혀들 시대도 아니다. 체격이 변했는데 옛날 유니폼 입혀봐야 어색할 뿐이다. 일을 권하기보다 삶을 권할 때 자발적 성과향상이 더 유력하다.

결론은 ‘회사와 가정의 양립조화(Work Life Balance)’다. 선진국의 출산문제를 해결한 유력카드 중 하나다. 일과 삶을 적절히 조화시킨 근무형태의 제안ㆍ준수다. 일 때문에 애를 낳지 않자 이를 해결코자 회사와 가정, 그 둘을 모두 껴안은 정책세트다. 처음엔 여직원을 타깃으로 했지만 이젠 남 직원에까지 넓혀졌다. 방향은 하나다. ‘회사→가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지금껏 편향적으로 치우친 까닭이다. 회사와 가정은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다. 바늘과 실이다. 그러니 양립조화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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