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얼기설기] 외교 현장에서의 과학기술

입력
2015.04.12 13:18

미국ㆍ쿠바 해양생태계 등 공동 연구

과학기술은 국가 간 우호 만드는 도구

우리도 외교의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과 한라산은 화산이다. 특히 백두산은 1,000여년 전 대폭발이 있었고, 이후에도 화산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백두산을 연구하여 폭발 위험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도 백두산의 폭발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리적인 특성상 일본 역시 백두산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화산 폭발과 함께 하늘을 뒤덮는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지는데, 백두산 화산재의 상당량은 동해와 일본, 태평양을 향해 날아간다. 1,000년 전의 대폭발 때도 일본을 괴롭혔다는 기록이 있다. 비단 화산재뿐 아니라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우리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몇 년 전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겪으면서 중국의 해안가를 따라 자리잡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만약 이 발전소에 문제가 생긴다면 미세먼지처럼 서해를 건너 우리나라로 날아올 방사능 물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국가 간의 각축장인 외교 현장에서 민간의 교류가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화해와 수교를 이끌어낸 것은 탁구였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1993년 평화조약을 맺었는데, 두 나라를 가로지르는 강을 공동으로 활용하기 위한 내용이 안보와 영토, 피난민 문제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강물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에서부터 신뢰에 기반한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과학기술 협력이 양국 간 의사소통과 협력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과 쿠바 간에도 해양 생태계나 허리케인 등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으며, 최근 이루어진 양국 간의 관계 정상화에도 보탬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북한의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김책공대에 미국의 대학이 디지털도서관을 설립하기도 했고, 백두산 역시 북한, 미국, 유럽의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의 정책은 중립적이지 않다. 하지만 과학기술 연구개발 활동 자체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래서 과학기술은 국가간 우호 관계 형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미국과 러시아 등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러한 프로젝트에는 예산과 시설의 사용,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협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서로에 대한 이해는 적대국 간의 대화를 위한 물꼬가 된다. 영구중립국에 위치한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원은 냉전 시대에 유럽을 중심으로 양 진영이 교류하는 장이었으며, 국제이론물리센터(ICTP)는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가 함께 하는 창구이다.

이제 우리도 국제외교 무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상을 가진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과학기술 국제협력 역량 역시 함께 성장하고 있다. 미래의 에너지를 연구하는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에는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참여하고 있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긴장관계가 흐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와 APEC기후센터도 우리나라에 있다.

흔히 과학기술 국제협력이라 하면 학자들의 공동연구와 기술교류 및 이전을 생각한다. 물론 시작점이 공동연구에 있지만, 과학기술의 역할이 여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과학기술 외교와 관련된 과학기술계의 관심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중요성 인식과 지원이 증가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 국제외교 활동의 주요 주체로 자리매김하기를 희망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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