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에세이] 야만과 차별의 식판

입력
2015.03.27 15:31

내 ‘늙은 제자’이기도 하고 전직 기자였으며 평생 노동자 시인으로 활동하며 다문화 가정과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에 자신을 바치며 소년범들을 위한 후견인 역할을 하는, 소금 같은 이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인용해서 올렸다.

어느 비행기에 한 백인여성이 스튜어디스에게 옆자리에 흑인이 앉아있어서 자기는 앉을 수가 없다며 자리를 바꿔 달라 요구했단다. 그러나 이코노미석 자리는 이미 다 찼고 스튜어디스는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돌아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는 기장에게 물었지만 이코노미석에는 자리가 없고 일등석에만 자리가 있다고 하자 그 백인여성이 거칠게 따졌단다.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자신들의 항공사는 이코노미 승객을 1등석으로 바꿔준 전례는 없지만 옆자리 승객 때문에 불편해 하니 부득이 자리를 바꿔주겠다고 응대했다. 그 말에 신난 그 백인여성이 기쁜 표정으로 짐을 싸려고 일어서자 그녀를 만류하며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실례지만 다시 짐을 싸지 않도록 옆의 손님을 1등석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상상만 해도 통쾌하다. 그 백인여성은 야비한 인종차별로 흑인승객뿐 아니라 다른 승객들까지 불편하게 했지만 스튜어디스의 재치로 전세가 역전되었으니 승객들은 환호하고 심지어 기립박수까지 쳤단다. 실제로 포르투갈 항공사에 있었던 일이며 이 일화는 인종차별을 따끔히 질타하는 공익광고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못난 어른들이 아이들 식판을 흔들며 엉뚱한 짓 하는 바람에 서민과 아이들 가슴이 멍들고 있다. ‘무상’급식은 공짜 심리에 편승한 멍청한 짓이라며 ‘선별’ 급식으로 전환하고 그 ‘절약된’ 돈으로 학습 지원 비용으로 쓰겠단다. 그런데 가난을 증명해야 그 돈을 준단다. 그건 절약이 아니라 약탈이고 차별이다. 자기는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 그 자리까지 간 것인데, 지금은 개천에서 ‘욕’나오는 세상이 되었다는 건 모르는 처사다. 정확히 말하면 무상이 아니라 ‘의무’ 급식인데 그 의무를 억누르며 그걸 보수의 가치라고 떠들어대고, 거기에 맞장구 치는 이들까지 나대니 이슈메이커로서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복지는 돈이 남아서 퍼주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약자를 더 깊은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떠받침으로써 사회적 붕괴를 막고 제도와 질서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최소의 비용 지출이다. 21세기에 19세기 바이마르공화국만도 못한 의식으로 살아가면서 태연할 수 있는 무지와 뻔뻔함이 경악스럽다. 다른 지자체들은 돈이 남아돌아서 의료원 운영하고 의무급식하는 게 아니다. 불용 예산 삭감하고 짧은 국내선조차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으로 다녀야 한다. 그걸 문제 삼으니 고작 한다는 말이 자신도 앞으로는 그런 정치쇼라도 해야겠다고 빈정대는 협량함을 태연하게 보이는 자가 도백이라니 한심하다.

더 이상 이런 야만과 차별을 용납해선 안 된다. 그걸 이겨내는 것이 바로 연대의 힘이다. 함께 앉지 못하겠다고 화 벌컥 내며 자리 바꿔 달라고 호들갑 떨며 다른 이들까지 불쾌하게 만든 그 백인여성이 일등석 자리라는 말을 듣자마자 제 짐 꾸리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스튜어디스의 재치로 자신이 차별하려던 그 흑인승객이 일등석 누리는 호사를 받게 되었을 때 그녀의 당혹감은 어땠을까? 그 자리는 약자와 차별 받는 이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게 정치고 그런 가치가 인격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태도가 정치를 좌우할 수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연대의 힘이다.

이 아름다운 봄날, 길고 매운 겨울 이겨낸 자연의 숭고함과 기특한 꽃망울 이야기로도 아까운 시간, 더 이상 이런 답답한 이야기로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게, 그런 인종차별 일삼는 백인여성 따돌리듯 못난 정치인 제발 퇴출되는 모습 좀 보자.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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