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박근혜 대통령은 왜?

입력
2014.12.26 16:42

문답 회견을 가장 꺼리는 대통령

말해 주지 않으니 듣는 것도 없어

일방적 담화 발표라면 하지 말기를

박근혜 대통령은 왜 대통령이 된 것일까. 취임 2년이 돼가는 시점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을 살피다 보면 이런 의문이 자꾸 생긴다. 설마 취직을 하기 위해서? 아니면 어려서 살던 집 청와대에 대한 향수 때문에? 아니면 나라와 결혼했다는 애국애족의 자세를 보여주려고? 아니면 다른 일을 할 줄 몰라서?

이런 불손한 의문이 들 만큼 박 대통령은 지금 혼자서 이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 소통의 발원지요 국정 운영의 중심이어야 할 청와대에 마치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하나 있어 한겨울 추위를 더하는 냉기와 한풍(寒風)을 뿜는 것 같은 인상이다.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던 다짐과 달리 청와대는 적막하고 대통령은 쓸쓸하고 나라는 소슬하다. 많은 국민이 처참하거나 참담하거나 섭섭하거나 민망한 마음인 채로 2014년을 보내고 있다.

왜 그럴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대통령은 왜 스스로 외롭게 살고 혼자서 짐을 다 지려 하는 것일까?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업무가 끝난 다음 관저에서 하는 일’에 대해 보고서를 보는 시간이 가장 많다고 답변했다. 개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으며 국정과 취미를 따로 할 시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렇게 일만 하지 않아도 된다.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대통령의 일이지 스스로 일만 하는 것은 마땅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어긋났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장관과 수석 비서관들에게 “우리는 열심히 일만 하자”고 말한 적이 있다. 국민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그 사람들은 뭘 몰라서 그러는 거니 귀담아듣지 말라는 듯한 당부였다. 대통령은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과 말을 하고 대화해야 하는 국가대표 공직자다.

그런데 대통령이 장관들과 잘 대면을 하지 않는다, 국회의장이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안 된다, 사람보다 문서를 더 믿는다, 저녁에 혼자서 식사를 한다, 한 번 눈밖에 나면 어떻게 풀거나 만회할 방법이 없다… 이렇다면 누가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든 쉽게 꺼내지 못하게 찬바람이 도는 곳에서 사람들은 절로 위축돼 몸을 낮추고 받아쓰기만 하게 될 뿐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를 하는 방법으로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자회견이다. 취임 첫 해에 김대중 대통령은 8회, 노무현 대통령은 11회, 이명박 대통령은 4회 기자회견을 했지만 박 대통령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 이후 더 이상의 문답은 없었다. 그나마 지난해 기자회견도 각본에 따른 문답과 정권 편의적 언론사 선정으로 뒷말이 많았다.

2015년 신년 벽두에는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청와대는 여러 가지를 검토 중이라는데, 일방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담화 방식이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여론이 높다. 하도 대화가 없다 보니 ‘대통령 기자회견에 관한 법률’이라도 만들자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사망한 미국의 전설적 백악관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는 “미디어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고, 대통령 기자회견은 가장 뚜렷한 증거”라고 말했다. 질문이 아프고 불쾌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말대로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헬렌 토머스의 생각에 비추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1월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해 국민의 각종 의문과 궁금증을 풀어주고 함께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만하자”는 말을 네 번이나 할 만큼 지겨워하고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어쨌든 대화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6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낯을 붉히고 다투기도 했지만, 그 회견은 물이 튀고 물고기가 뛰듯 활발발(活潑潑)했다.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재미도 긴장도 없는 ‘청와대 행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회견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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