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칼럼] 홀로 가족’이 되기 위한 조건

입력
2014.11.11 20:00

급변하는 인구 패러다임

사회 전분야에 소용돌이로

1인가구 건강성 회복해야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798년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익명으로 발표한 저술의 경고문이다. 197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내걸고 국가적으로 시행한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의 이론적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인구 감소를 걱정하며 다자녀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인구 패러다임은 ‘인구는 국력’이다.

인구에 관한 각종 통계들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가 급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20여 년 전인 1991년과 비교하면 남녀 평균 결혼연령은 28세에서 33세로, 25세에서 30세로 각각 5년 씩 늘어났다. 이혼율은 11.4%에서 35.7%로 3배가 늘었다. 반면 가임여성 예상 출산율은 1.57명에서 1.19명으로 감소했다. 한마디로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게 하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사회 풍조가 됐다.

가족 구성도 크게 변했다. 한 세대 전엔 5인 가족이 평균이었으나, 지금은 8%에 불과하다. 반면 1인 가구의 비율은 9.0%에서 25%로 급증했다. 불과 반세기 전엔 3대가 같이 사는 확대가족이 일반적이었으나, 핵가족화를 거쳐 지금은 아예 가족 해체까지 걱정하게 됐다. 독거노인이나 이혼으로 돌아온 싱글 같이 어쩔 수 없는 홀로 살기는 예전에도 많았으나, 경제적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선택한 자발적 1인 가구가 크게 늘어난 까닭이다. 이를 두고 가족 해체라 해야 할지, 새로운 가족 유형의 출현이라 해야 할지 의견은 분분하다.

한 세대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인구 감소와 가구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파장을 미친다. 의료 재벌이 되는 지름길이었던 산부인과가 몰락하고, 뒤이어 소아과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모든 대학은 고교 졸업인구 급감으로 정원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홍역을 치른다. 반면 풍요와 자유를 누리는 화려한 싱글족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장도 출현한다. 1인용 칸막이 식당이 등장하고, 1인용 세탁기가 판매되고, 도시락과 국밥까지 갖춘 편의점이 활황이다.

주택 시장도 변화한다. 중대형 아파트의 인기가 떨어지고, 그 틈새를 소형 임대 주택들이 파고든다. 새로운 싱글 산업은 ‘좀 더 작고 간편하게’를 지향한다. 음식이나 가구는 그 목표가 적절하다. 그러나 삶의 자리인 주택의 경우, 작고 간편한 것이 꼭 행복은 아니다. 홀로 살던, 4인 가족이 살던, 자고 먹고 씻고 싸는 기본적인 공간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인터넷 쇼핑을 통해 소비 생활을 즐기는 골든 싱글들은 드레스 룸과 같은 더 많은 공간을 요구한다. 4인 가족에 비해 1인 가구의 주거 면적이 절대 4분의 1로 줄지는 않는다. ‘참새도 내장은 다 있다’는 격언을 생각하자. 물론 고시원과 같이 기본 공간들을 생략할 수 있지만 그 환경은 너무 열악한 수준이다. 또한 주택 공간을 일정 규모 이하로 줄이게 되면, 심리적 육체적으로 불편을 초래해 급기야 장애까지 일으키게 된다.

홀로 살기를 택하는 가장 큰 목적은 자유로운 삶이다. 그러나 때때로 자유의 균열 사이로 고독과 불편이 찾아온다. 홀로 식사의 쓸쓸함을 피하려 잦은 외식이나 결식을 하면 건강까지 해치게 된다. 그래서 주방과 식당, 빨래와 건조를 공용화하고 나머지 개인 공간을 더 고급화하는 실험 주택들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동네 사랑방과 같은 사교 공간을 두기도 한다. 이 공용 공간에서 이웃 솔로들을 쿨하게 접촉해서라도 고독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부재시 배달되는 택배를 받아두고, 방문객을 대신 맞이하는 도어맨과 같은 대리 가족도 공동으로 고용한다. 외부 침입을 실시간으로 알려줘 여성 솔로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전용 경비 서비스도 등장했다.

1인 가구가 건강한 가족의 형태로 자리 잡으려면, 일상적 풍요와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간헐적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축적 해결과 운영의 묘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모델은 결국 과거의 하숙집을 고급화, 세련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숙을 통해 맺어진 형제 같은 친구들, 부모를 대리한 하숙 집주인의 존재가 새삼 새롭다. 결국 전통적인 가족 관계만이 근본적이고 유일한 대안일까?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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