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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는 길 막힌 건 노태우 정권 시절

전두환 때 국무회의 녹취록이 받아쓰기로

대통령무능 사죄하고 진실 밝힐 확신줘야

청와대로 들어 가는 모든 골목을 경찰들이 바투 붙어서 빽빽이 막고 있다. 치안에 투입되어야 할 인력이 세월호 유족들이나 연대하는 시민들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겠다고 저렇게 늘어섰다. 세월호 유족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 그냥 열심히 살던 시민들이다. 어쩌면 일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을지도 모를 유권자들이다. 가족이, 자녀가 왜 죽었는지나 알겠다고 나선 것 뿐이다.

세월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유족들만이 아니다.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한국사회 전체가 알아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유족들이 수구 인사들의 고약한 욕설까지 들어가며 외쳐야 한다. 유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는 것은 항의의 뜻도 아니다. 대통령의 진심을 듣고 싶은 것이다. 이걸 경찰이 온갖 모욕적인 방법으로 막는다. 이들을 지나칠 때마다 억울한 고문의 현장을 외면하는듯한 분노와 무기력이 덮친다.

청와대로 가는 길은 한국사회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얼마나 민주화가 되었느냐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분수대 쪽 주변도로와 인도가 일반에 개방됐다. 김대중 정부는 청와대에 붙어있는 칠궁의 문을 열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이 개방되어 청운동에서 팔판동으로 가는 길이 뚫렸다. 그런데 다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은 노태우 시절로 뒷걸음질쳤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대통령 말을 받아쓰기 할 때부터 이미 박정희 시절로 퇴보했다. 국무회의를 마치자마자 청와대 비서실이 녹취록을 만들어 전 부처에 돌리는 것은 전두환 때부터의 전통이다. 녹취록은 공무원이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하던 녹취록을 박근혜는 받아쓰기로 바꿨다. ‘모두가 대통령에게 배운다, 지시받는다’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겠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멍청한 집단이라는 느낌만 준다. 과거로 가버린 박근혜 정부 사람들만 못 느끼고 있겠지만.

매일 아침 관저로 수석비서관들을 불러 아침회의를 한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김기춘 비서실장과 실세로 알려진 극히 소수의 비서관과만 대통령과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서관들은 비서관 회의가 아니면, 장관들은 국무회의가 아니면 대통령 얼굴조차 볼 기회가 없다. 장관이나 각 분야 수석비서관을 두는 것은 전문가들로 보좌하기 위해서인데 이들이 대통령에게 허심탄회하게 전문가로 의견을 들려줄 기회는 당연히, 없다. 대통령의 뜻은 절대명령이다.

전두환 시절에 독립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원씨가 겪은 일화이다. 누군가가 창덕궁에 영빈관을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대통령도 재가했다고 들었다. 이진희 문화공보부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서 절대 안된다는 뜻을 설명했다. 전두환은 다 듣더니 “그렇재?(그렇지)”라고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전두환에게도 가능했던 의사결정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절대권력인 청와대는 지금 세월호를 덮고 싶어한다. 이 메시지를 받아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다고 덮어질까.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수사권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주는 특별법 제정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막으려고 하지만 유족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 진실을 정부가 파헤쳐준다는 확신이 서면 특별법이 아니라도 받아들일 것이다. 그 신뢰를 못 심어주기 때문에 이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왜 못 믿나. 국회 청문회에 나올 수 없다고 버티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나옴으로써 대통령이 7시간 동안 국정 지휘자로 부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추려고 들다가 밝혀지고 마는 상황이 거듭되기 때문에 정부를 신뢰할 수 없어서 정부 바깥에 조사를 맡기도 싶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7시간의 잘못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 단지 무능이 잘못이었을 뿐 해경의 구조 회피에 대한 진짜 책임자만 정확히 가려내 준다면 유족들은 얼마든지 대통령을 용서하고 그를 토대로 새로운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데에 동의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자꾸 과거로 뒷걸음질치면서 유족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족과 만나서 그들의 진심에 대답하는 것이다. 유족들을 괴롭히는 수구들을 단속하고 경찰을 치워서 청와대 가는 길을 열어서 진실과 대면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추석을 며칠 앞둔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명절분위기를 찾아볼수 없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진도현지에 머무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을 찾지 못했는데 무슨 명절이냐"며 차례상을 차리자는 정부관계자의 제안을 사양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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