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천고사설] 세월호, 상명지통(喪明之痛)

입력
2014.09.04 20:00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을 천붕(天崩), 또는 도독(?毒)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의 천붕은 임금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사용한다. 임금을 군부(君父)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도독의 도(?)자는 씀바귀를 뜻하는데 쓰다는 뜻도 있다. 서경(書經) ‘탕고(湯誥)편’에 “흉하고 해로운 데 걸려서 도독(?毒)을 견디지 못한다(罹其凶害不忍?毒)”는 말이 있는데, 그 주석에 “도독(?毒)은 고통스러운 것으로서 그 가혹함을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는 뜻이다.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자연의 순리지만 그 슬픔이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법이다. 하물며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나쁜 상(喪)이라는 뜻의 악상(惡喪)이 자식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지만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喪) 중에 어찌 호상(好喪)이 있겠는가? 요즘 수명이 길어진 탓인지도 모르고 문상을 가보면 곡하는 사람 찾기 어려운 반면 툭하면 호상이라고 웃는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전을 꽤 많이 뒤적거려 보아도 호상이란 용어를 찾지 못했다. 어떤 불효자식이 만든 용어인지 몰라도 연세가 아무리 많아도 부모와 영이별하는 데 어찌 즐거움이 있겠는가? 효자에게 어찌 호상이 있겠는가? 악한 시대의 패악한 언어일 뿐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한다.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대척(大慽)이라고도 하는데 역시 큰 슬픔이란 뜻이다. 성호 이익(李瀷ㆍ1681~1763년)은 외아들 맹휴(孟休)가 영조 27년(1751년) 만 서른넷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크게 상심한 나머지 건강을 해쳤다. 이때 이익의 나이 만 일흔이었음에도 그토록 슬픔이 컸다. 그래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썼던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은 이익에게, “선생께서 또 대척(大慽)을 만나셔서 병환이 더 심해지셨는데 말씀하시지 않는 가운데서도 가슴 속에 쌓인 근심과 염려는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내 위로했다.

그런데 자식의 죽음에 대해서 참척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용어는 상명(喪明)이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버이의 고통을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고 한다. 밝음(明)을 잃었다(喪)는 뜻인데, 자식이 보낸 슬픔이 너무 커서 시력까지 상실했다는 뜻이다. 상명은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고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에게 실제로 벌어졌던 실화이다. 공자 문하의 뛰어난 제자 열 명을 뜻하는 말이 공문십철(孔門十哲)인데, 그중 자하는 문학(文學)에 뛰어난 제자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에 이 실화가 나온다. 자하가 자식의 상을 당한 후 너무 슬퍼하다가, 그 시력을 잃었다(喪其明). 증자(曾子)가 조문하러 가서 말하기를 “내가 듣기에 친구가 시력을 잃으면 곡한다고 한다”라면서 곡을 했다. 자하 역시 따라서 곡을 하면서, “하늘이여!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울었다. 그러자 증자가 화를 내면서 자하에게 “네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라면서 세 가지 죄를 열거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네가 사는 서하(西河) 사람들이 너를 부자(夫子ㆍ공자)로 생각하게 했으니 첫 번째 죄이고, 네 부모가 죽었을 때 이렇게 슬퍼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고, 네가 자식을 잃고 그 눈을 잃었으니 이것이 너의 세 번째 죄이다”라는 꾸짖음이었다. 그러자 자하가 “내 허물이로다. 내 허물이로다. 내가 그대들과 떠나서 홀로 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잘못을 인정했다는 고사다. 증자라고 어찌 자하의 슬픔이 와 닿지 않았겠는가마는 슬픔 때문에 눈까지 멀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한강(寒岡) 정구(鄭逑ㆍ1543~1620년)는 일찍 죽은 박진휘(朴震輝)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부친을 이렇게 위로했다. “크고 작은 고향 많이 돌아본 후생이라/그대 부음 듣고 너무 슬펐네/어머니 뒤를 따라 저승으로 돌아가니/눈 먼 부친 아픔 위로할 말 없네(多少鄕閭閱後生/自聞君訃最傷情/萱堂隨引歸長夜/春府無辭慰喪明)”

세월호 사건은 자식 잃은 부모들의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일이 풀린다. 서경 ‘고요모(皐陶謨)편’은 “관직이란 하늘이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하는 것이다(天工人其代之)”라고 말했다. 관직, 즉 정치는 하늘이 할 일을 사람에게 대신 시킨 천공(天工)이란 뜻이다. 천직(天職)이란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천공을 행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채 모두 수장(水葬)시켜 놓고도 하늘의 견책이 내릴까 두려워 떨기는커녕 유족들을 압박하는 행태를 보면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다. 무능(無能)한 것도 용서할 수 없는데 악(惡)까지 보탠다는 말인가? 공자께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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