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칼럼] 나랏돈에 대한 예의

입력
2014.08.05 15:51

2기 경제팀의 화끈한 재정확장정책

돈만 푼다고 경기 살아날까

대증요법 보다 구조개혁이 우선돼야

나랏돈이 또 풀린다. 경기부양을 위한 46조원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막자면 실탄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대의명분이 내걸렸다. 추경은 아니지만 충분히 천문학적인 액수다. 사실상 역대 최대치다. 약발이 떨어질 때마다 더 뿌리겠다니 실은 ‘46조+α’다. 끌어 모아 쓸 수 있는 재원이면 다 쏟아 붓겠다는 의지표명이다. 선거까지 이겼으니 민생안정을 내세운 정책추진은 한층 힘을 받을 전망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부양대책이 갖는 최소 의미가 여기에 있다. 경기부침은 곧 심리현상이란 점에서 기대가 적잖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갈 것”이라는 파워풀한 경제수장의 발언강도도 주목된다.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심리적 차별성을 뒷받침해서다. 무기한 확장정책이 그 정황증거다.

다만 이번 정책카드의 최대의의인 성공적 경기부양은 어떨지 모르겠다. 물꼬는 틀 수 있을지언정 방방곡곡의 마른 땅을 적실지는 미지수다.

정책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뜨겁다. 아니 정확하게는 헷갈리는 눈치다. 2기 경제팀의 기본철학은 시장우선인데 정책 내용은 정작 분배중심인 까닭이다. 시장개입으로 돈을 뿌리겠다는 건 케인지안의 후예다운데, 정치리더십은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양팔 가득 반겨야 할 재계가 갸우뚱하는 배경이다. 검증 받지 못한 낙수효과 대신 참신한(?) 분수효과를 내세운 것도 논란거리다. 궤도수정이라면 늦어나마 다행스럽다. 다만 과연 그럴까. 세부내용을 뜯어보건대 이도 저도 아닌 충돌적인 혼재정책이 상당하다. 어정쩡한 정책세트의 성공사례는 없다.

정책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경제정책이란 필요하면 좌우를 오가며 균형을 잡아주는 게 맞다. 조심할 건 명확한 상황판단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이 안 먹힌다. 통증주변은 잘 짚어낸 것 같다. 양극화에 따른 순환단절이 경제피폐를 낳았다. 이게 불확실성을 확대재생산했다.

문제는 처방이다. 돈만 푼다고 경기가 살아날 수는 없다. 뿌려서 살아난다면 경제란 의외로 쉽다. 현실은 그렇잖다. 의도대로 내수? 가계에 미소가 돌지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한 건 패를 쥔 쪽의 속내다. 기업이 따라줄지 미지수다. 정부 정책에 반해 피해나갈 구멍은 많다. 무엇보다 초반의 정책의지가 흔들릴까 두렵다. 상호이해가 맞는 정경관계의 밀월회복 혐의다.

정작 걱정스러운 건 나랏돈 염려다. 여기서 기시감(旣視感)이 떠오른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다. 기업과 수출을 위한 가계와 내수의 볼모처지에도 이차원(異次元)이란 표현처럼 대규모, 무기한의 부양카드는 먹혀 들었다. 2기 경제팀도 이를 분석했을 터다. 그래서 벤치마킹에 차별화까지 더했다.

다만 재원분석은 의심스럽다. 빚일 수밖에 없는 나랏돈 방출계획이 일본과 닮았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조달환경이 천양지차인 까닭이다. GDP대비 230%의 국가 부채지만 일본이 빚으로 나랏돈을 활용한 건 비교우위의 가계자산과 대외자산 및 통화신뢰 등이 존재해서다.

한국은 다르다. 나랏돈과 관련해 일본을 따라갈 이유도 명분도 없다. 재정건전성은 악화일로다. 아직은 안전수위라지만 신뢰하기 힘들다. 공기업 등 숨겨진 빚까지 더하면 시한폭탄에 가깝다. 십분 양보해 나랏돈으로 부양효과가 나면 다행이다. 훗날 재정확보가 한결 쉬워져서다.

다만 이는 낙관론에 가깝다. 여태껏 경험은 부정적이다. 비용 및 편익분석으로는 추진불가에 가깝다. 특히 나랏돈은 집행자만 있지 책임자는 없다. 후속세대의 외상장부로 떠넘겨질 뿐이다. 애초 2017년 달성목표였던 균형재정도 결국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가뜩이나 복지확대로 재정압박이 위협적이다. 이럴수록 인기영합적인 단기?즉흥적인 처방은 경계대상이다.

우선순위는 근본적인 구조개혁이지 대증요법은 아니다. 소중한 나랏돈이 먹혀 들도록 기본체질을 바꾸는 게 급선무다. 와중에 개혁논의는 은근슬쩍 물밑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나랏돈은 더 소중히 관리되고 지출돼야 한다. 피땀 흘려 번 내 돈처럼 쓸 때 효과는 배증된다. 나랏돈이 화수분일 수 없다. 눈먼 돈일 수는 더더욱 없다. 나랏돈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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