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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에 짓눌리는 젊은 예술가들

성공 요인에 대한 학설 엇갈려

예술적 신념과 노력이 성패 갈라

졸업을 앞둔 어느 4학년 학생에게 자조 섞인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신입생 때는 자신이 천재인 줄 알았는데, 막대한 과제와 엄격한 평가에 시달리다 보니 범생이가 됐고, 졸업 후 생계와 진로를 생각하면 백수가 될까 두렵다는 것이다. 예술계에서 꿈의 학교인 한예종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으니,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자신 앞에 펼쳐질 장밋빛 미래에 황홀했을 것이다. 반면 대학 4년의 혹독한 수련을 마치고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지만, 생존조차 어려운 예술계의 현실 속에서 장래에 대한 걱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선망의 대상인 의사들은 스스로 자신은 불행하고 가족에게는 행복한 직업이라 말한다. 경제적 여력은 있으나 자신들은 좁은 진료실 안에서 늘 아픈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푸념이다. 반대로 예술가는 자신은 행복하고 가족은 불행한 직종이 아닐까? 늘 새로운 창작의 기쁨을 누리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학교가 취업과 진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도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예술의 발생 이래, 수많은 예술가들은 경제적 안위보다 예술적 성취를 위해 일생을 바쳐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문제는 예술가로서의 성공, 예술적 성취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가에 달려있다. 영재들을 선발하여 예술가로 키워야 할 예술학교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있다. 학생들의 고민의 핵심은 내가 택한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가, 그리고 나는 과연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이 문제에 대해 교육심리학계의 연구는 상반된 학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주류의 학자들은 예술적 성공이란 선천적 재능보다 후천적 환경과 노력에 의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특수 영역에 재능을 가진 자가 그 영역에 종사할 때 창의성을 극대화한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 음악 영재는 과학 연구나 회사 경영에는 재능이 희박하며, 음악분야에서 발굴해 잘 교육시켜야 성공한다는 연구 결과이다. 또한 존 헤이스는 창의적 업적을 남긴 고전 작곡가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이 명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시기는 적어도 10년 이상을 작곡활동에 몰두한 이후였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뤄진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 학설을 뒤집는 충격적인 것이다. 잭 햄브릭 교수의 연구팀은 여러 연구를 통해 예술 분야에서 실력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높아야 2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노력은 낭비라고 경고한다. 하루 3시간씩 10년, 총 1만 시간을 전공에 투자하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학설이다. 살리에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차르트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지 않았던가.

예술을 좋아하면 적성에 맞는 것이고, 적성에 맞으면 재능이 있는 것이니 열심히 10년만 연마하라고 가르쳐온 필자의 교육 방침에도 큰 혼란이 생겼다. 재능 없는 학생들에게 막대한 과제를 부여하고, 가차 없는 평가를 통해 혹독한 연습과 훈련을 시켰던 것일까? 햄브릭의 학설에 따르면 그런 노력들은 학생에게 큰 희생이요, 학교로서 실수이며, 국가적으로 큰 낭비가 된다.

그러나 어느 학설에 따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있다. 선천적 재능을 가진 천재라도 학습과 노력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김정희는 젊은 시절 그저 재주 있는 신동에 불과했지만, 그의 고백대로 벼루 열 개에 밑창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든 끝에 추사체를 완성하고 대가가 됐다.

우리 학교의 교수들이 연습에 지치고 게으른 제자들에게 이르는 격언이 있다.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삼일 안 하면 선생이 알고, 일주일 안 하면 관객이 알고, 한 달 안 하면 세상이 안다.” 재능이 뛰어나든 모자라든 노력이 없으면 성취는 없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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