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시행 2년… 아직도 간접체벌 횡행

입력
2014.06.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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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시행령으로 조례 무력화

심한 얼차려로 근육까지 손상될 정도의 피해를 입은 서울 강서구 고교생 사례는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교육부와 진보교육감 간의 갈등 속에 학교 현장에 여전히 체벌이 횡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간접체벌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종류의 체벌을 금지한 인권조례를 ‘교실 붕괴, 교권 추락’ 등의 논리로 반대해온 교육부가 학칙에 의한 훈육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2011년) 서울(2012년) 전북(2013년)에서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체벌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을 금지’했고, 경기학생인권조례도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약 2개월만에 학교장이 학칙을 제정ㆍ개정할 수 있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 시행했다. 시행령 34조8항에는 “교장은 학생을 지도 할 때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해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도구나 신체 등을 이용한 직접체벌만 금지하고, 오리걸음, 팔굽혀 펴기 등 간접체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간접체벌을 허용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학교에 줬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간접체벌을 용인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조례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훈육ㆍ훈계의 방식은 학교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교장이 학칙으로 만드는 것이지 간접체벌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며 “개별 학교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는 부분을 획일적으로 조례에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ㆍ보수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학생인권조례가 논란이 되다 보니 조례 실행 여부를 감독해야 하는 서울시교육청은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앞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조례에서 규정하는 학생의 권리를 교육상 필요 등에 의해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 개정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2012년 조례가 교육현장에 적용된다”면서도 “훈육ㆍ훈계 방식을 학칙으로 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도 있어 조례가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찬성파와 반대파 간 논란이 계속되면서 교육청, 학교에서 혼선이 빚어져 조례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교권과 충돌한다는 등의 부작용을 내세워 학생인권조례를 부정하는 것보다 모든 체벌을 금지한 조례를 인정하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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