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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힘들면 그건 재미없는 책이에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권을 번역해 온 김석희(54ㆍ소설가)씨는 “그와 함께 한 세월은 언제나 신났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로마인…>의 첫 독자였던 그에게, 저자와 책의 매력을 물었다. “그의 문체는 남성적인 활달함이 있어요. 로마의 도로처럼 거침없이 뻗어가는 힘과 표현의 묘(妙)가 독특한 흡입력을 발휘하지요. 알다시피 <로마사…>는 기본적으로 역사물이지만, ‘왜?’를 묻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답하는 책이잖아요. 상상력과 재해석이 필요하지요.”

‘사실(史實)+알파’의 그 ‘알파’ 속에 나나미적 글쓰기의 특징이 숨어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역사의 재해석이란 역사와 현실의 끊임없는 대화를 주선하는 과정이거든요. 로마인을 이야기하면서 시사적 관심을 유발하고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죠. 가령 이 책 1권 초판이 일본에서 출간된 1992년은 일본 경제 버블 10년이 구체화하던 시기였어요. 제대로 된 리더에 목마른 시민들 앞에 로마의 제왕들을 내세운 것이지요. <로마인…>의 흥망사 중심에는 리더십의 문제, 지도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잖아요.”

리더십은 우리 독자들이 느껴온 갈증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세계화’라는 또 하나의 시대적 담론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구호에 <로마인…>이 호응한 측면이 있어요. 세계 경영, 포용력, 현지화 등 로마의 제국화 과정이 세계화 담론의 주요 단서들과 맞물렸던 거지요. 실제로 이 책 1~3권 번역본이 나왔던 초창기에는 일반 독자들보다는 재계 사람들과 공무원들이 많이 봤어요.”

지금 그는 “진행 중이던 작업들을 모두 매듭짓고, 마지막 권이 올 때까지 손목을 풀고 있다”고 했다. “하루 평균 원고지 100매 남짓씩 해서 18일 정도면 번역 원고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고 나면 정말 시원섭섭할 것 같다”고 했다. <로마인…>이 초대형 스테디셀러가 됐지만 그가 번 돈은 많지 않다. 인세 계약이 아니라 매절 계약(원고지 매수당 번역료를 받는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인세 계약을 하시지 그랬냐고 농담처럼 묻자 “그런 거 따지면 인생살이가 고달파진다”고, “그래도 출판사에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더라”며 웃었다.

<로마인…>이 잘 나가자 일각에서는 전공 학자도, 학자도 아닌 아마추어가 쓴 책이라고 폄하하기도 했고, 일본 우익의 대동아공영권 부활 음모가 숨겨진 제국사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런 지적들에 대해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전문 학자의 역사 서술에 다른 차원이 있겠지만, 왜 우리에게는 <로마인…>과 같은 책이 없는지 반성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각광 뒤에 이 탁월하고 성실한 번역가가 있었다는 사실, 그의 문장이 있어 <로마인…>의 현지화ㆍ한국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는 <로마인…>과 함께 한 세월이 행복했다고 말했지만, 저자 역시 그 같은 번역가를 만난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독자들도 이 두 비범한 저자와 역자를 만나 행복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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