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상류층 婚脈" 조사/재벌-권력-언론 끼리끼리 결혼 "그들만의 세계"

입력
2004.01.15 00:00

한국 상류층의 혼맥(婚脈) 분석결과 재계 및 정·관·언론계 등 극소수 상류층끼리의 혼인이 점점 많아져 상류층의 혼맥이 더욱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 것으로 14일 나타났다.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이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재벌연구팀에 의뢰, 52개 재벌가와 3,000여명의 정·관·언론계 지도층의 혼맥을 조사한 결과 LG 일가는 10개의 재벌가와 사돈을 맺고 있었고 삼성그룹 일가는 7개, 전 현대그룹 일가는 5개의 재벌가와 혼인관계를 가지고 있었다.오너 일가 규모 만큼 혼맥도 넓은 LG

LG 창업 일가는 1957년 삼성과의 혼사를 시작으로 재벌간 사돈맺기를 시작했다.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아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딸(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누나)과 결혼했다. 이후 LG 일가는 다방면으로 혼맥을 엮어 나갔다. 구자훈 LG화재해상보험 회장의 딸은 금호그룹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의 손자와 결혼했고, 고 구인회 회장의 손녀는 한진그룹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4남과, 조카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 정일선 BNG스틸 부사장과 결혼했다. 이외에도 LG일가가 직접적인 사돈관계를 맺은 재벌가는 대림 두산 한일 벽산 대한펄프 등이다.

LG 일가의 혼맥은 재계 뿐만 아니라 언론계, 관계, 재계, 법조계, 학계 등으로 이어진다. LG의 또다른 창업 일가인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의 조카는 조선일보의 고 방일영 회장의 아들인 방상훈 사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관계에서는 김동조(전 외무부장관) 이계순(전 농림부장관) 김태동(전 보사부장관) 이재전(전 성업공사 사장)씨, 학계의 조필대 (전 이화여대 교수) 조영식(경희대 이사장) 이상돈(중대 의대 교수) 심창유(청주사범대학장)씨, 법조계에서는 이흥배(변호사)씨 등과 사돈을 맺었다.

다른 재벌가도 혼맥 복잡해

삼성 일가는 이건희 회장이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딸 홍라희씨와 혼인을 했고, 미원 창업주인 임대홍 명예회장과 사돈관계를 맺었다. 삼성은 동방 라이프 동아 등 재계에 방대한 '우군'들을 확보하고 있고 이문호 서울대 교수,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 등 관계, 학계 인사와도 사돈을 맺고 있다. 전 현대그룹 일가는 한때 권력 핵심부와 사돈 관계를 맺은 것이 특이하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 정숙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노경수씨와 결혼했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4녀 김영명씨와 결혼했다. 현대그룹은 또 롯데 쌍용 전남방직 강원산업 등 다른 기업들과도 사돈관계를 맺었다. 한편 언론계에서는 동아일보 김병관 전 명예회장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 딸과 결혼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LG와 삼성을 통해 동아일보와 연결되는 것을 고려할 때 조선·중앙·동아일보는 혼맥관계로 얽혀 있는 셈이다.

국내 재벌들은 혼맥으로 얽혀 있어

재벌가를 통해 형성된 혼맥도를 살펴보면 국내 52개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LG 일가는 미원과 직접 사돈은 아니지만 삼성과 금호를 통해 미원과 '사돈의 사돈' 관계가 되고 롯데도 한진과 현대를 통해 관계가 만들어진다. 조선일보는 태평양과, 태평양은 롯데와, 롯데는 한진과, 한진은 LG와, LG는 조선일보와 사돈관계를 맺고 있어 모아놓고 보면 5각형의 '사슬' 모양을 형성한다.

혼맥도를 흐름대로 따라가다보면 상상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은 신동방 신명수 회장의 장녀와 결혼했고 신 회장은 송인상 전 재무부장관의 차녀와 혼인했으며 손 전 장관은 이봉서 전 동자부장관과 동서였다. 이 전 장관의 3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장남 정연씨와 결혼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태우 전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는 혼맥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관계는 또 있다.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그 반대편의 정점에 서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도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권 전 고문의 장녀 수현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중간에 한국제분, 효성 등을 거쳐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한일, 양택식 전 서울시장, 노신영 전 국무총리, 풍산 등을 거쳐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혼맥이 이르게 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인물 데이터베이스와 문서자료, 1991년 이후 일간지에 나온 인물동정란을 통해 혼맥도를 정리했고 최종 검토를 거쳐 이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최근엔 재벌 3세간 혼사가 대부분

참여사회연구소 분석결과 1960∼70년대에는 재계와 정계가 만나는 정략 결혼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세대를 거칠수록 재벌끼리의 혼인이 늘어났고 특히 외환위기를 겪은 90년대 이후부터 재벌 3세대간 혼사도 많아졌다.

연령대별 재벌가의 혼인 상대를 보면 20∼30대는 정·관계 16%, 재계 60% 40대는 정·관계 14%, 재계 37% 50대는 정·관계 23%, 재계 29% 60대는 정·관계 13%, 재계 26% 등으로 최근 이뤄진 젊은 재벌 3세들의 혼사는 대부분 재벌가 '끼리 끼리'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재벌가의 일원이 상류층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 비율은 50대가 33%, 40대 27%, 20∼30대 13% 등으로 재벌가 사람과 일반인간 사돈 맺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삼성, LG, SK 등 5대 재벌의 경우 상류층이 아닌 사람과 결혼한 비율은 22%로, 그밖의 재벌가가 일반인들과 결혼한 비율(39%)의 절반에 불과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40·50대의 경우 5대 재벌과 50대 재벌의 차이가 각각 16∼18%, 30∼35%로 2배에 가깝지만 20∼30대로 내려가면 12%, 13%로 비슷해지고 있어 50대 재벌 역시 5대 재벌과 마찬 가지로 내부에서 거대한 '혼맥 블록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소는 "이른바 한국의 상류층이라는 정·재계, 언론계 인사들은 혈연을 통해 부의 축적은 물론 권력 안정화 및 세습을 공고히 했다"며 "재벌간 혼사가 늘어난 것은 스스로의 위치를 확고히 굳힌 대기업들이 몰락과 부침이 잦은 정치인들과 혼사 맺기를 꺼리기 때문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특히 재벌3세들은 90% 가까이가 상류층 내부 인사들과 혼인하고 있어 '기득권 재생산'구조가 심각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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