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히말라야서 실종 ‘직지원정대’ 추정 시신 2구 발견 “꼭 돌아와 편히 잠들길…”

입력
2019.08.11 14:51
수정
2019.08.11 23: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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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실종 민준영ㆍ박종성 대원 추정 시신 발견

히말라야 유일 우리말 이름 ‘직지봉’ 명명한 주역

원정대ㆍ유가족 “신원확인 후 유해 수습해 귀국”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 등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준영(오른쪽)ㆍ박종성 대원. 직지원정대의 핵심인 두 사람은 세르파 등 현지 고용인 도움없이 새롭고 험난한 루트를 찾는 알파인 방식을 고집했다. 직지원정대 제공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 등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준영(오른쪽)ㆍ박종성 대원. 직지원정대의 핵심인 두 사람은 세르파 등 현지 고용인 도움없이 새롭고 험난한 루트를 찾는 알파인 방식을 고집했다. 직지원정대 제공

“다음달이면 준영이와 종성이가 히말라야 설산에서 홀연히 사라진 지 꼭 10년이에요. 이번에 두 대원이 꼭 우리 곁으로 돌아와 평온히 잠들길 기원합니다.”

10년 전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직지원정대 민준영(당시 36세)ㆍ박종성(43) 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1일 박연수(55) 전 직지원정대장은 “꿈만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당시 원정대를 이끈 그는 “신원이 최종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두 대원으로 확실시된다. 돌아오면 ‘그 동안 춥고 험한 데서 고생 많았다’고 말해 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직지원정대는 최근 네팔등산협회로부터 두 대원이 실종됐던 안나푸르나 지역 히운출리(해발 6,441m) 북벽 인근에서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신은 실종된 두 대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등산복 브랜드가 두 대원이 실종 당시 입었던 것과 동일하고, 옷 안에서는 태극기 문양의 소지품과 한국 음식 등이 나왔다.

박 전 대장은 “시신 발견 지점에서 실종된 사람이 두 대원뿐인 점, 현지에서 보내온 영상물과 지형 정보 등을 종합해 볼 때 두 사람일 확률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실종 장소는 설벽과 빙하가 이어진 험준한 곳이라 일반인은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라며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시신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신은 지난달 23일쯤 현지 주민이 발견했으며, 현재 네팔등산협회 등에 의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옮겨진 상태다. 현지 경찰은 시신을 산 아래 포카라시에 있는 병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박 전 대장과 두 대원의 유가족 등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12일 네팔로 출국한다. 이들은 유전자 검사로 신원을 확인하는 대로 현지에서 화장한 뒤 유해를 수습해 귀국할 계획이다.

2009년 히운출리 북벽에 신루트인 ‘직지 루트’를 개척하러 나선 직지원정대. 이 원정대는 직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충북지역 산악인들이 2006년 결성했다. 직지원정대 제공
2009년 히운출리 북벽에 신루트인 ‘직지 루트’를 개척하러 나선 직지원정대. 이 원정대는 직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충북지역 산악인들이 2006년 결성했다. 직지원정대 제공

고 민준영ㆍ박종성 대원은 히말라야에서 우리말로 된 단 하나의 봉우리인 ‘직지봉’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직지원정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충북지역 산악인들이 2006년 결성한 등반대다. 원정대는 히말라야의 이름없는 봉우리를 등정하거나 신루트를 개척해 직지 이름을 붙이는 도전에 나섰다.

두 대원은 이 원정대의 일원으로 2008년 6월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 산군의 무명봉(해발 6,235m)에 세계 최초로 올라 직지봉이라 이름지었다. 이 명칭은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공식 승인됐다. 히말라야의 유일한 한글 이름 봉우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두 대원은 여세를 몰아 2009년 9월 수직 빙벽으로 악명높은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북벽에 신루트인 '직지루트'를 개척하러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수직벽이 막 시작하는 해발 5,400m 지점에서 무전으로 ‘이제 암벽구간을 지나 본격적으로 설벽에 오른다’고 소식을 전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원정대는 현지 등반전문가 등을 동원해 10여일 동안 빙벽과 등반로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5차례 헬기 수색까지 벌였지만 두 사람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이 사고 이후 직지원정대는 직지 이름을 붙이는 도전을 중단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내 직지교 입구에 세워진 민준영ㆍ박종성 대원 추모조형물. 도예가 김만수씨가 제작한 이 조형물은 두 대원이 도전했던 히운출리 북벽을 그대로 본 땄다. 아래 추모비에는 ‘직지를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히말라야의 별이 된 두 대원을 청주 시민들과 함께 영원히 기억하며’라고 적혀 있다. 한덕동 기자
청주고인쇄박물관내 직지교 입구에 세워진 민준영ㆍ박종성 대원 추모조형물. 도예가 김만수씨가 제작한 이 조형물은 두 대원이 도전했던 히운출리 북벽을 그대로 본 땄다. 아래 추모비에는 ‘직지를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히말라야의 별이 된 두 대원을 청주 시민들과 함께 영원히 기억하며’라고 적혀 있다. 한덕동 기자

두 대원은 높이보다 등반 과정을 중시해 어렵고 험난한 코스를 개척하는 알피니즘을 추구했다. 이런 두 대원의 도전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북지역 산악인들은 실종 이듬해 히운출리 베이스캠프에 추모탑을 세우고 매년 추모 등반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 내 직지교 입구에 두 사람을 기리는 추모조형물과 추모비를 설립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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