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정시한 못 지킨 예산안,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해야

입력
2017.12.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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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이 법정시한인 2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표결 지연으로 시한을 조금 넘겨 지각 처리한 사례는 있으나, 올해처럼 아예 예산안 처리가 무산되기는 4년 만에 처음이다. 여야는 2일 밤늦게까지 3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2018년 예산안 처리를 위한 협상을 이어 갔으나 공무원 증원 규모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3일에도 예산안조정소위 소소(小小)위원회를 열었지만 네탓 공방만 벌이며 결론을 내지 못해 4일 추가 논의에 나서기로 했다.

4일 본회의 일정을 잡아놓은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야 지도부에 “4일뿐만 아니라 한시라도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이 통과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 대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대 쟁점은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공무원 1만2,000명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3조원 규모 일자리지원 예산이다. 공무원 증원 규모를 놓고 자유한국당은 7,000명, 국민의당은 9,000명 선으로 줄이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1만500명 선으로 맞섰다. 대기업을 겨냥한 법인세 인상을 놓고도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이 세 가지 쟁점은 보수ㆍ진보 진영이 오랜 기간 첨예하게 맞서 온 것으로 시각 자체가 워낙 달라 타협의 여지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자기 입장만 고집하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우리 경제는 올해 반도체ㆍ석유화학 호조로 3%대 성장이 예상되지만, 수출 온기가 전체 산업으로 번지지 않은 데다 가계 실질소득이 줄면서 체감경기는 엄동설한인 게 현실이다.

일부 쟁점 탓에 429조원 규모 전체 예산안이 발목을 잡히면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등 새 정부 신규 복지사업은 물론 재정이 투입되는 주요 정책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재정집행 시기를 놓쳐 예산 활용의 효율성도 떨어지게 된다. 최소 비용으로 정부를 운용하는 준(準)예산 사태만은 막아야 하는 까닭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구태를 막기 위해 여야 합의로 만든 법이다. 여야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입장만 내세워 법정시한을 넘긴 것은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여당은 여소야대라는 현실의 벽을 인정해야 한다. 핵심 정책을 지키겠다는 욕심에 시간을 더 끌게 되면 경제 불확실성이라는 먹구름을 키워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야당도 국민이 선택한 새 정부의 첫 예산안인 만큼 대승적인 차원에서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야당이 수적인 우위를 이용해 여당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야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염두에 두고 정기국회 회기 내 반드시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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